사회 사회일반

사고-국가과실 인과관계 입증이 관건

■ 세월호 참사 국가 상대 손배소 승소 가능성은

서해훼리호·보트침몰 사고때 항만청·해경 등 상대 승소했지만

삼풍백화점 땐 "공무원 과실 있었지만 붕괴와 관계 없다" 패소

명백한 국가과실 드러나더라도 인과관계 없다면 배상책임 없어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 유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현행 국가배상법은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 손해를 입힌 경우 국가가 이를 배상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 5일 유가족들은 "앞으로 진행될 국가 상대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자료로 활용하겠다"며 진도와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의 교신 기록과 인천 해경이 촬영한 동영상을 보전해 달라는 증거기록보전 가처분 신청을 각 지방법원에 냈다. 이어 13일에는 피해 유족 중 1명이 사고 선사인 청해진해운과 국가의 부실 안전관리에 책임을 물어 9억원의 위자료를 요구하는 첫 손해배상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하기도 했다.

사고 피해 가족들은 국가가 국민 안전을 보호할 의무를 저버리고 사고 가능성이 높은 배를 운항하도록 놔두지는 않았는지, 구조에 책임이 있는 해경이 사고 당시 과실 또는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 등으로 피해를 확대시킨 건 아닌지에 대해 의심하고 있다. 이들이 VTS의 증거보전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도 구조 과정에서 해경의 과실은 없었는지 등을 파악해 입증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대한변호사협회 세월호 법률지원 및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한 관계자는 "진상 파악이 완료되기 전에 예단을 하는 것은 이르지만 국가가 사고에 대해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과거 비슷한 사건에서도 승소한 경험이 있는 만큼 가능성이 아주 낮은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안전관리 미흡 부분에 있어 세월호 사건과 가장 유사한 사례로는 1993년 최대 인원을 초과한 승객과 과적 화물을 싣고 가다 침몰 돼 292명의 사망자를 낳았던 서해훼리호 사건을 들 수 있다. 정부는 유족 대표단과 협의해 1인당 9,200만원의 보상금을 일괄 지급했으나 피해자 가족 대다수가 반발해 서해훼리㈜와 해운조합, 항만청과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법원은 당시 사고가 안전운항에 책임이 있는 운항관리자(선장이 대행)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기에 발생했다고 보고, 선장을 고용해 배를 운항한 선사와 운항관리자의 사용자 지위에서 감독 의무가 있었던 해운조합에 손해배상 책임을 물었다. 아울러 국가 산하 지방해운항만청 역시 당시 여객선운항관리요강에 따라 운항관리자의 직무수행상태를 철저히 감독했어야 하므로 공동불법행위자로서의 책임이 있다고 봤다.

그러나 서해훼리호 사건 결과를 세월호 사건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서해훼리호 사건 이후 개정된 여객선안전관리지침에서는 선박운항관리자의 근무요령 제정까지 해운조합에 맡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감독 의무가 법에 명시돼 있지 않은 이상 국가 기관을 공동불법행위자로 포함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관측이다.

구조 당시 해경과 정부의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에 대해 참고할 만한 판례는 2005년 5월 보트 침몰 사고로 7명의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들 수 있다.


구모씨는 남편과 자녀 등 8명과 보트를 타고 화성시 입파도에서 전곡항으로 돌아오던 중 보트가 김 양식장 그물에 걸려 침몰하는 사고를 당했다. 피해자들은 사고 시점인 오후 4시 20분부터 구명조끼를 착용한 채 부표 등에 의지하며 구조를 기다렸다. 하지만 구씨 혼자만 다음날 새벽 6시 20분께 인천해경에 의해 구조되고 나머지 7명은 저체온증으로 숨졌다. 당시 인천해경은 보트가 귀항예정시간을 훨씬 넘겼는데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입항했다'고 보고해 신고를 지연시킨데다 해무 등을 핑계로 경비정을 늦게 출동시키는 등의 과실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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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법원인 수원지법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초동조치를 소홀히 해 다수의 인명사고를 방지하지 못한 책임이 있으므로 해양경찰관으로서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이 인정된다"며 국가가 유가족 8명에 총 8억원 상당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해경이 신속하고 적절하게 초동조치를 했더라도 이미 피해자들은 사망했을 것이기에 해경의 과실과 피해자들의 사망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해양조난사고는 그 위험성이 다른 사고에 비해 훨씬 중대하다는 점에 비춰 해양경찰은 일반경찰보다 더욱 엄격한 업무상 주의의무를 부담한다고 할 것이므로 해경의 과실과 이 사건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는 매우 폭넓게 해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해경의 과실이 이 사건 피해자들의 사망을 직접 야기한 것은 아니라는 점, 인력과 장비 부족이라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을 고려한다 해도 해경들에 대한 비난 가능성이 경감된다거나 이 사건 사고의 상당인과관계가 부정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항소심에서 손해배상액이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대법원에서도 이 사건 손해에 국가가 책임이 있다는 판단은 뒤집어지지 않았다.

세월호 사건에서도 해경이 명백한 과실을 범하지는 않았지만 여력이 있는데도 구조에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될 경우 역시 국가손해배상의 가능성이 열려있다. 법원은 경찰의 권리행사 방식이 원칙적으로는 해당 경찰의 재량에 위임돼 있다고 보지만 상황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제때 취하지 못한 부작위(不作爲)가 피해 발생 또는 확대에 현저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판단한 경우 위법한 직무행위로 보고 국가 배상책임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위법한 직무행위에 대한 사례는 지난 2012년 발생한 이른바 '오원춘 살인사건'에서 찾을 수 있다. 오원춘은 밤 10시 30분께 귀가하던 여성을 성폭행하기 위해 자신의 집으로 납치했고, 강간이 실패하자 살해하고 시신을 토막냈다. 당시 피해 여성은 납치된 뒤 경찰에 전화로 구조요청을 했지만 경찰이 주요 신고 사실을 누락해 지령을 내리는 등 초동수사에 미흡했던 점이 알려지면서 책임 논란이 불거졌다. 유족들은 경찰이 좀 더 주의를 기울여 적절한 조치를 취했더라면 피해자가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소송을 냈고 법원은 유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8월 서울중앙지법은 "신고 접수 경찰관이 초기 대응과정에서 피해 여성에 대한 긴급하고도 중대한 위해상황을 현장 출동 경찰관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고, 현장 경찰관들 역시 단순한 순찰을 넘어 집중적인 탐문수색 또는 CCTV 확보를 통한 현장 확인 등의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데도 하지 않은 것은 현저하게 불합리하므로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위법행위로 인정된다"며 유족들에 총 1억원 가량의 보상금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하지만 국가기관 또는 소속 공무원의 과실이나 불법행위를 입증해 낸다 하더라도 이것이 곧바로 국가 상대 손배소송의 승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명백한 과실을 밝혀내더라도 그 과실과 사건 사이의 인과관계가 없다면 국가는 배상책임을 지지 않는다. 대법원 역시 판례를 통해 공무원이 직무상 의무를 위반해 끼친 손해에 대해서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만 배상 책임을 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일명 '중곡동 주부 살인사건'로 아내를 잃은 박모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박씨는 "법원이 제대로 형을 선고하지 않아 살인자 서진환이 3년이나 빨리 출소하게 됐고 이 사건이 벌어졌다"며 "또 서씨가 이 사건 직전에도 성폭행을 저질렀고 현장에서 DNA가 발견됐지만 검찰과 경찰이 DNA를 통합 관리하지 않아 일찍 검거하지 못했기에 범행을 막지 못했다"며 소송을 냈다. 그러나 법원은 "이 사건 수사과정 등에서 미흡한 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범행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박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손해를 입은 피해자들 역시 비슷한 이유로 패소 판결을 받았다. 이들은 구청 직원들이 삼풍백화점 임직원들에게 뇌물을 받으며 건축허가 등을 부실하게 내줬기에 붕괴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주장했고 1, 2심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대법원에서 파기됐다. 대법원은 "붕괴 사고의 원인은 어디까지나 건축주의 무계획적인 건축과 소유자의 관리·유지 잘못이 경합된 것"이라며 "국가가 실질적으로 관여·감독할 수 있거나 해야 하는 부분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수도권에 있는 한 지법의 판사는 "국가가 아무리 국민 안전을 책임질 의무가 있다 할지라도 누군가가 언제 범죄를 저지를 것까지 예측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중곡동 주부 살인사건 경우처럼 사건 발생에 명백한 가해자가 있는 경우라면 국가 과실이 있더라도 사건과의 상당 인과관계를 입증하기란 쉽지 않다"며 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세월호 사건 역시 수시로 과적 운항 등을 해온 선사와 배를 버리고 달아난 선장 등의 과실이 매우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라며 "국가기관의 과실 또는 불법행위를 입증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세월호 침몰 사고에 따른 피해와 국가기관의 과실 간의 상당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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