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鄭泰守) 전 한보그룹 총회장이 4일 국회 경제청문회에 출석, 지난 92년 대선 직전 김영삼(金泳三) 당시 민자당 대통령후보에게 직접 150억원의 대선자금을 전달했음을 사실상 시인, 정치권에 파문이 예상된다.한보의 비자금이 대선자금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의혹이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온 가운데 이날 鄭전총회장의 증언으로 그중의 일부나마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여권은 金전대통령의 청문회 참석을 촉구하고 나섰다.
국민회의는 이날 오전 긴급 구수회의를 가진 데 이어 오후에는 긴급 간부회의를 열어 鄭전총회장 발언의 파장을 분석하는 한편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실제 국민회의 주변에서는 鄭전총회장의 증언으로 지난 97년 한보청문회 당시 밝혀내지 못했던 한보사건의 실체가 규명됐다고 평가하면서도 향후 鄭전총회장의 발언이 정치권에 미칠 파급효과 등을 예의 주시하며 술렁이고 있다.
국민회의 정동영(鄭東泳) 대변인은 이날 『金전대통령은 나라를 망치고 IMF를 초래한 정권의 책임자로서 국민 앞에 나와 이에 대해 소상히 설명해야 한다』고 청문회에 출석할 것을 촉구했다. 자민련 이규양(李圭陽) 부대변인도 『이같은 정경유착의 고리가 한보부도를 초래하고 총체적 국가위기를 불러왔다』며 『金전대통령과 한나라당은 구(舊)여권에 흘러들어간 정치자금의 전모를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金전대통령의 상도동 자택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나라당 박종웅(朴鍾雄) 의원은 이와 관련, 『鄭전총회장의 증언은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한 뒤 『정치보복적 청문회에는 일절 응할 수 없다는 게 기본방침이며 이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한나라당 안택수(安澤秀) 대변인은 『鄭씨가 과거 청문회 때와는 달리 金전대통령에게 대선자금을 전달했다고 증언한 의도가 매우 의심스럽다』며 『鄭씨의 증언이 진실규명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당시의 다른 당 후보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대선자금도 규명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安대변인은 이에 앞서 『여권에서 鄭씨와 사전 접촉한 의혹이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국회 IMF환란특위는 鄭전총회장이 건강악화를 이유로 신문중지를 요청함에 따라 1시간35분 만인 오전11시10분께 신문을 조기 종료했다.
한편 한나라당 김명윤(金命潤) 의원은 자신의 집에서 50억원을 전달했다는 鄭전총회장의 증언에 대해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92년 대선 당시 민자당 사무총장을 지냈던 김영구(金榮龜) 의원도 선거자금으로 50억원을 전달했다는 鄭전총회장의 주장에 『재정위원으로 있으면서 몇억원씩 당에 낸 적이 있어 액수는 모르겠으나, 선거자금으로 50억원을 낸 적은 없다』며 역시 鄭전총회장의 증언을 부인했다.【양정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