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전력수급 백년대계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겪는 블랙아웃 위기는 무비유환(無備有患)으로 인한 고통이지만 안정된 전력수급이 요원한 것이 더 걱정이다. 우리의 발전설비 용량은 8,374만9,000kW에 달하지만 전력공급 능력은 7,072만6,000kW에 불과하다. 블랙아웃은 전기사용량이 전력공급량을 초과해 발생하는 최악의 재앙이다. 정부가 블랙아웃을 막기 위해 강도 높은 전력수요 관리를 실시하는 가운데 국민들에게 절전을 연일 호소하고 있다. 예비전력 500만kW를 기준으로 100만kW씩 떨어질 때마다 단계별 절전행동 요령을 마련한 비상 5단계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데 최악의 상황인 심각단계는 예비전력이 100만kW 이하가 될 때 강제로 순환단전 조치를 취하는 시나리오다.

근시안적 정책 무비유환 불러

블랙아웃 위기가 일상처럼 돼버린 것은 에너지가 국민의 생존과 직결되는 심각성을 간과한 원칙 없는 정치에서 비롯됐다. 30여년 동안 국가를 통치한 역대 어느 정권도 지금의 전력수급 위기상황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정권이 바뀐다고 결코 바뀔 수 없는 것이 에너지 정책일진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보여주기식의 온갖 에너지 정책이 난무했지만 정권퇴진과 함께 사라지는 한시적 국가 시스템 운영이 전력수급 위기를 초래한 것이다. 한마디로 포퓰리즘 정치에서 비롯된 역대 정부의 '모럴해저드'다. 닥칠 위기를 예견하고도 정작 할 일을 안 해 겪는 고초다. 이런 정책으로 우리는 국내총생산(GDP) 1,000달러를 생산하는 데 1차 에너지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선진국의 2~3배나 소비하며 에너지 사용의 선진문화도 정착돼 있지 않다.


원전비리는 지탄을 받아 마땅하지만 그들의 책임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이는 공직자의 공직윤리 망각과 국가정체성 실종에서 야기된 제도와 정책의 모순이 비리를 키워왔기 때문이다. 비리가 난무할수록 국민들은 정직한 참공직자를 더욱 갈망한다. 참공직자에게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믿고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는 것은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국가사랑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에너지 효율 높은 산업구조로 바꿔야

최근 1년 동안 원전비리 대책을 다섯 번씩이나 내놓았지만 비리는 점입가경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이유도 깊이 성찰해야 한다. 수조원이 들어간 원전이 불과 수천만원의 비리로 멈춰선 것은 용서받지 못할 범죄다. 총체적 비리로 원전발전 용량의 41.5%인 861만kW의 전력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지만 사실 안전은 더 우려된다.

만시지탄이나 정부는 전력수급백년대계를 수립해야 한다. 자원개발도 필요하지만 전기사용 의존도를 줄이는 산업과 생활 구조개편 등을 비롯한 에너지 효율화 증진과 에너지 절약을 위한 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지표관리다. 시스템 개혁의 정신인 에너지 절약문화도 정착시켜야 한다. 절전이 전력수급 안정화의 본질은 결코 아니지만 절약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제2의 자원이다. 자원빈국이 에너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도는 지속적인 지표관리로 에너지 사용 선진국이 되는 길뿐이다. 비록 전력안정화가 이뤄져도 에너지절약운동과 전력수급 5단계 시스템 운영은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초석으로 지속돼야 한다.

안정된 전력수급은 국민의 생존수단으로 국가발전의 원동력이며 지속가능한 발전의 원천이다. 그러나 원칙 없는 정치와 비리가 난무하는 말뿐인 정책으로는 이를 기대할 수 없다. 위기의 시대를 살아야 하는 국민에게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는 근원은 유비무환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