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작가와 닮은 '할머니'들의 일화

■ 친절한 복희씨 / 박완서 지음, 문학과 지성사 펴냄


작가와 닮은 '할머니'들의 일화 ■ 친절한 복희씨 / 박완서 지음, 문학과 지성사 펴냄 강동효 기자 kdhyo@sed.co.kr "내 평생 소설집을 또 내겠어요?" 서울 삼청동 한 음식점에서 만난 작가 박완서(77)는 잠시 뜸을 들인 뒤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이 나이되면 일상의 반복이 지겨워 글 쓰는 일로 무료함을 달래요." 9년 만에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를 들고 찾아온 문단의 대표작가 박완서는 전혀 노쇠하지 않았다.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 '그리움을 위하여'가 작가의 경험담을 비춰 썼다며 수줍게 웃음 지을 때는 다시 소녀로 돌아간 듯한 인상을 비췄다. 2001년 제1회 황순원문학상을 받은 단편 '그리움을 위하여'는 칠순을 넘은 주인공이 진갑(進甲)이 지난 사촌동생을 가정부로 들인 뒤 겪게 되는 일화를 감칠 맛나게 그린 작품. 2001~2006년 사이 창작과비평 등 문학 계간지에 기고한 단편을 모은 이번 소설집에는 유독 '할머니' 주인공이 많이 등장한다. 작가 스스로 가장 애착을 갖고 썼다는 단편 '대범한 밥상'은 암으로 시한부 인생 판정을 받은 노인 화자가 들려주는 친구 경실의 이야기다. 비행기 사고로 딸과 사위를 한 번에 잃은 경실은 사돈 영감과 일상을 함께 한다. 주위에서 두 노인이 살림을 차렸다는 등 흉흉한 소문이 돌자 주인공은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노인들의 소외와 고독을 흥미로운 일화를 통해 맛깔스럽게 풀어낸 이 작품은 작가의 탁월한 글솜씨를 확인케한다. 표제작인 '친절한 복희씨'의 주인공도 할머니다. 주인공 복희는 19살에 취직하러 상경했다가 방산시장 홀아비 가게 주인에게 겁탈당해 그와 살림을 차렸다. 전처 자식인 맏이를 포함 5남매를 키워 독립시킨 뒤, 그녀는 중풍에 걸린 남편을 돌보며 살고 있다. 제 몸도 채 못 가누는 남편이 약국에서 정력제 '비아그라'를 사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지난날을 떠올리며 복수를 꿈꾸는데... 하지만 작품에 잔혹한 복수는 등장하지 않는다. 일상의 아픔을 인간적인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작가의 살내나는 글쓰기 덕분이다. "폭력으로 여자를 정복할 수 있다는 남자들의 그릇된 믿음을 비꼬았다"는 작가의 말이 여운을 남긴다. 입력시간 : 2007/10/19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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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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