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소비회복을 위한 선결과제

강두용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얼마 전 발표된 국민소득 통계에 따르면 우리 경제의 1ㆍ4분기 성장률은 2.7%에 그친 것으로 나타나 연초부터 팽배해온 경기회복의 기대감을 무색하게 했다. 지난해 수출이 30%가 넘게 증가했는데도 소비부진으로 성장률이 5%에 못 미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고유가와 원화 강세라는 악재 속에서 성장률 하락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지난 2003년 이후 진행돼온 이번 경기침체의 특징은 소비가 전체 경기의 부진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민간소비의 경우 2003년 2ㆍ4분기부터 6분기 연속 감소 후 최근 들어 가까스로 증가세로 돌아섰다. 경기침체기에 마이너스 성장이 다반사인 선진국에서도 이 정도의 소비침체는 이례적인 현상이다. 90년대에 장기침체를 겪은 일본에서조차도 95년부터 2003년까지 9년간 소비가 감소한 시기는 7개분기뿐이고 연속 감소는 3개분기 이상 이어진 적이 없다. 소득 양극화 개선이 급선무 우리 경제에서 이처럼 심각한 소비침체가 일어난 원인은 무엇일까.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답변은 소득부진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경기침체에서는 소비가 소득보다 더 큰 폭의 침체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이것은 충분한 답이 되지 못한다. 소비저하가 소득부진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은 소비성향의 추이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총소득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인 소비성향은 외환위기 이후 현저히 하락해 2004년에는 90년대 평균에 비해 약 13%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즉 소비성향이 하락하면서 소비가 침체되고 이것이 다시 총수요 부족을 통해 소득부진을 가져오는 전형적인 케인스형 경기침체가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경기부진의 근본적인 원인은 소비성향의 현저한 하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소비성향이 비정상적으로 하락한 중요한 원인의 하나는 소득 양극화로 대표되는 분배구조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소득 양극화는 상대적으로 소비성향이 높은 중ㆍ저소득계층의 소득 비중을 축소시켜 경제 전체의 소비성향 하락을 가져온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의 분배격차가 크게 확대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며 이 같은 분배격차 확대는 소비성향 하락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간단한 예로 90년대 이후의 가계소득 격차와 전체 경제의 소비성향의 변화 추이를 살펴보면 양자는 놀랄 만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실제로 필자가 통계청의 계층별 가계소득 및 소비 자료를 통해 분석한 결과 2000년 이후 소비성향 하락폭의 약 70%가 분배구조 변화 요인에 의해 설명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양극화로 대표되는 분배구조 변화는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의 충격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점에서 최근의 경기침체가 외환위기에 뿌리를 둔 구조적 변화와도 맞닿아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기진단에서 얻을 수 있는 정책적 함의는 무엇일까. 우선 정책 당국은 현재의 경기부진이 단순히 순환적 요인을 넘어서는 구조적인 문제와도 깊게 연관돼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성격의 경기침체는 과거의 평균적인 경기순환에 비해 회복이 쉽지 않고 회복이 이뤄지더라도 완만한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음으로 소득분배 문제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통계청의 최근 발표를 보면 올해 1ㆍ4분기 들어 가계소득 격차는 더욱 확대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소득격차의 확대가 지속된다면 소비회복의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는 점에서 소비회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득격차의 개선이 선결돼야 한다. 소득격차의 해소를 위해서는 중ㆍ저소득계층의 소득 창출이 급선무이므로 기존의 경제정책들도 이 목표와 조화를 이루도록 조정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부동산투기 억제정책의 경우 다주택 혹은 고가주택 가구에 대한 과세는 강화하더라도 중저가 1주택 가구에 대한 세금은 대폭 경감해 경기진작 효과를 발휘하도록 하는 등의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최근의 경기침체나 분배구조 변화 문제는 우리 경제의 산업 및 취업구조 변화 추이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00년께 이후 소득격차가 확대된 원인 중 하나는 제조업의 고용흡수력 저하와 더불어 상대적으로 취업이 손쉬운 영세 자영업형 서비스 부문에 노동력이 집중되면서 공급과잉이 빚어져 이 부문의 소득이 크게 감소한 데 있다. 분배구조 개선을 위한 노력은 이 같은 산업구조적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모색도 포함해야 한다. 적절한 분배·복지정책 필요 이번 경기침체의 배경을 생각할 때 현 상황의 한국 경제에서는 분배구조 개선을 위한 노력이 성장과 결코 배타적이지 않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분배나 복지를 위한 정책은 오히려 작금의 경기침체 탈피에 큰 효과를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분배정책의 수혜 대상이 되는 저소득계층의 입장에서 볼 때 경기침체기야말로 그러한 정책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되는 시점이라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일례로 미국의 경우 1930년대 극심한 대공황을 겪고 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 아래서 사회보장제도의 초석이 놓여졌다는 사실을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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