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손에 손잡고 방마다 이야기꽃

손에 손잡고 방마다 이야기꽃[장벽을넘어서] 남북이산상봉 이틀째 꿈만같은 하루였다. 서울과 평양에서 상봉 첫날을 보낸 이산가족들은 밤을 하얗게 보냈다. 오늘은 가족들을 만나 무엇부터 물어볼까. 하지만 정작 혈육을 만난 자리에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이틀째인 16일에도 돌아가신 부모형제, 자매이야기로 부여잡은 손을 놓치 못했다. 단절된 지난 50년의 회포를 말로 하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쏜살처럼 흘러갔다. 남측 이산가족 방문단은 16일 오전10시 20분부터 각자의 호텔방에서 비공개로 북쪽 가족들과 개별상봉을 가졌다. 북측 방문단도 개별상봉과 민속관 등 서울시내관광을 했다. 서울에서 아버지영정 모셔놓고 흐느끼며 뒤늦은 절 "오빠, 나 이뻐보여" 얼싸안고 사진촬영도 롯데월드 밴드맞춰 '우리의 소원' 합창 ○…오전, 오후 두 개조로 나눠져 이루어진 이날 개별상봉에서 가족들은 이산의 한을 품고 돌아가신 분들을 애도하며 영정만 모신 채 제사를 지내기도 했으며 가족에 관한 얘기, 지난 50년간 살아온 얘기 등 첫날 상봉에서 미처 못다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전날 치매에 걸린 100세 노모를 만났던 이종필(69)씨는 이날 동생 종국(53)씨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정과 제수용품을 준비해와 객실안에서 영정앞에 술, 건포, 과일, 향 등을 놓고 그동안 지내지 못한 제사를 지냈다. 이밖에 김홍래(67), 김동진(74), 권중국(68)씨등 상당수도 이날 남쪽 가족들이 부모님의 영정을 준비해와 객실안에서 뒤늦게 제사를 올렸다. ○…상봉가족들은 언제 다시 만날 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서로의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객실안에서 부둥켜안고 사진을 찍거나 미리 준비한 캠코더로 만남과정을 비디오로 촬영했으며 정성스레 준비한 선물을 교환하기도 했다. 북에서 온 오빠를 만나러 온 이완자(55)씨는 『오빠에게 예쁘게 보이려고 파크텔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왔다』며 『어제 차마 못나눈 얘기를 나눴다』며 상봉의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류미영(柳美英) 단장을 비롯한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은 서울 방문 이틀째인 16일 오전과 오후 A, B 두 개조로 나눠 서울 잠실 롯데월드 민속관 참관을 했다. 롯데월드측은 롯데월드 어드벤처 간판 밑에 「환영 남북이산가족상봉 서울방문단」이라는 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50년만에 서울을 찾은 북측 상봉단을 반갑게 맞았다. 방문단이 하차하자 26명으로 구성된 롯데월드 마칭밴드(MARCHING BAND)가 고향의 봄, 우리의 소원은 통일 등의 음악을 연주하며 방문을 환영했다. ○…민속관 참관을 하는 도중 50명의 북측 방문단원들은 나름대로의 소감들을 밝혀 취재진의 귀를 집중시켰다. 조진용씨는 『빨리 하나로 통일돼 살아야 북에 있는 가족이나 인민들도 이런 우리 민족 고유의 력사유산을 볼 수 있다』며 『빨리 하나가 돼 통일 박물관을 지어야한다』고 말했다. 박섭씨는 『민족은 역시 유기체같은 것이어서 둘이 되다가도 역시 하나가 되고만다』며 『몇번만 만나게 되면 자연히 의사소통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오전 11시10분께 민속관 참관을 마친후 저잣거리에 모인 방문단은 롯데월드측이 제공한 식혜를 들며 목을 축이기도 했다. 리종필씨는 『맛이 어떠냐』는 질문에 『고향맛과 유사하다』며 『북에서도 식혜 또는 감주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북측 최승철 부단장은 점식식사를 위해 롯데호텔 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북측 방문자 가운데 일부는 저잣거리까지 나온 친지들과 깜짝 상봉하는 모습도 여기저기서 관측됐다. 11시 35분께 황억구씨를 만나러 온 황씨의 외조카 이수향(36)씨는 황씨에게 『외삼촌 건강하셔야 돼요』라는 정담을 건넸고 황씨는 이씨의 뺨을 어루만지며 『(이씨의)어머니와 다시 만날 것』이라며 그리움을 달랬다. 평양에서 '어젯밤 수소문끝 오빠돌아가셨다'에 통곡 비공개 가족상봉 북측안내원 안보여 눈길 가족들 대동강 유람선 타고 함박웃음 만끽 ○…전날 척추질환으로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채 오빠와 사촌언니들을 만날 것을 기대했다 오빠는 못 만나고 사촌언니들만 만났던 김금자(69·서울 강동구 둔촌동)씨는 언니들로부터 『어젯밤 고향 친지들에게 오빠 소식을 수소문해보니 2년 전에 고혈압으로 사망했더라』라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전해 듣고는 통곡했다. ○…16일 오전 10시 20분부터 시작된 남북 이산가족 개별상봉은 한꺼번에 도착한 북측 가족들과 이를 취재하려는 내외신 기자들로 호텔 로비가크게 북새통을 이뤘다. 특히 이산가족 숙소가 모두 45층인 고려호텔 각 층에 고루 분포돼 있어 4대의 승강기로는 이들을 제때에 수용하지 못해 어떤 가족들은 11시가 다 돼서야 가족들을 만나기도 했다. 북 안내원 배석안해 ○…개별상봉에서는 당초 예측과 달리 북측 안내원들이 배석하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전날 단체상봉과 만찬장에서는 안내원들이 돌발사태(?)에 대비, 그림자처럼 따라붙었으나 이날 오전 개별상봉은 비공개임을 감안한 탓인지 가족들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북측이 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중앙텔레비전과 노동신문 등 북측 언론매체들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 소식을 남측처럼 대대적으로 보도하지는 않았지만 주요 뉴스로 계속 전했다. 특히 노동신문은 4면에 「흩어진 북남 가족들의 평양 출발과 도착」 소식과 상봉모습 등을 사진과 함께 톱기사로 보도하는 한편 『변할 수도 끊을 수도 없는 게 혈육의 정』이라며 『통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민족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남측 이산가족들은 정오 개별상봉을 끝낸 뒤 이들 북쪽 가족들과 함께 호텔 2, 3층 식당에서 평양방문 후 처음으로 오붓한 점심식사를 하며 담소를 했다. 점심식사를 마친 남측 방문단은 오후 3시부터 북쪽 가족들과 잠시 헤어져 대동강 유람선을 타고 평양시내 일원을 둘러본 뒤 단군릉 등을 참관했으며 저녁에는 다시 헤어진 북쪽 가족들과 만나 호텔에서 가족끼리 저녁식사를 했다. ○…16일 아침 방북단 숙소인 평양 고려호텔 앞 인근 거리는 직장으로 출근하는 시민들과 등교하는 학생들로 분주했다. 출근길 여성 중에는 따가운 햇살을 피하기 위해 양산을 받치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았다. 젊은 여성들은 대부분 깔끔한 정장 차림에 단정한 머리 모양을 하는 등 비교적세련된 차림이었다. 그 중에는 창이 넓은 둥근 모자를 쓰는 등 한껏 멋을 부린 여성도 눈에 띄었다. 거리를 지나는 한 시민에게 「이산가족 상봉 소식을 알고 있느냐」고 질문하자 『오늘 아침 신문 지면을통해 알았다』며 『아주 감격적인 상봉』이라고 답했다. 특별취재반 고광본기자KBGO@SED.CO.KR 한영일기자HANUL@SED.CO.KR 입력시간 2000/08/16 18:21 ◀ 이전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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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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