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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완화 확실히 하고 R&D 세제혜택 축소 등 투자 걸림돌 제거를
원샷법 연내 통과 불투명 '입법 지연' 국회 변화 필요
정부는 재정 확대와 함께 주도적 노동개혁 나서야
대한항공은 지난 18일 서울 종로 송현동 옛 미국대사관 숙소 부지에 호텔 대신 복합문화공간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7년 숙원이었던 서울 호텔사업의 꿈이 사실상 백지화된 것이다.
재계는 이번 호텔사업 포기 건을 정부와 기업의 대표적인 '엇박자' 사례로 보고 있다. 7성급 호텔을 지어 항공과 숙박서비스를 하나로 묶는 패키지 사업을 추진한다는 게 대한항공의 미래 먹거리 구상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알맹이가 빠져 시너지 효과가 줄었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까지 직접 관심을 가졌고 규제를 풀어주겠다고 약속했던 기업의 투자가 결국 어중간하게 마무리되는 모습을 보니 기업인 입장에서 맥이 풀리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둘러싼 경제환경이 '퍼펙트 스톰(두 가지 이상의 악재가 동시에 발생하는 현상)'으로 치달으면서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라도 기업이 진 부담을 정부와 입법부가 확실히, 그리고 최대한 빨리 덜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 경제가 휘청거리면서 글로벌 경제 전반에 위기 기운이 감돌고 미국 금리 인상이 임박한데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북한 리스크까지 불거진 가운데 우리 기업이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하려면 한국식 족쇄를 하루빨리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특히 △행정부와 입법부·지방자치단체 간에 얽혀 있는 '복합 규제' △형평성을 명분으로 한 조세 지원 축소 △기업 투자를 막는 입법 지연 △지지부진한 노동개혁 등 '4대 트랩'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한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확대 재정정책을 쓰는 동시에 서비스업 규제를 완화하고 노동시장을 개혁해 경기 부양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 발목 잡는 정부·국회=재계에서는 우선 기업의 투자를 독려하면서도 세(稅) 부담은 늘리는 정부의 모순적인 정책 방향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올해 세법개정안이 대표적인 사례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세법개정안을 발표하면서 "기업의 연구개발(R&D) 세액공제 항목을 축소해 실효세율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기업이 R&D에 투자하면 이와 관련해 세금을 일부 감면해주는 게 R&D 세액공제 제도의 골자인데 이 혜택을 줄이겠다고 나선 것이다. 예를 들어 에너지절약시설 투자세액공제율은 현행 3%(대기업 기준)에서 내년부터 1%로 줄어들고 생산성 향상 시설 투자세액공제 역시 같은 기간 3%에서 1%로 낮아진다. 기업들이 투자에 나설 때 느끼는 부담은 커지는 구조인 셈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마다 실무자를 불러내거나 공문을 보내 투자를 늘리라고 압박하면서 R&D와 관련한 세 혜택은 줄이겠다는 것은 모순 아니냐"며 "기업들이 미래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아직까지는 R&D 투자를 꾸준히 늘려가고 있지만 정부의 이런 세금 정책 기조가 유지되면 R&D 확대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올해 상반기 R&D 비용으로 7조4,111억원을 집행해 지난해 같은 기간(7조7,351억원)보다 약 3,000억원가량 줄었다.
기업의 인수합병(M&A)을 손쉽게 해주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일명 '원샷법(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 역시 연내 통과가 불투명하다. 이번에는 국회가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사례다. 여당은 이 법을 연내 통과시켜 기업 활동에 도움을 주겠다는 입장이지만 대기업 특혜법이라는 야당의 반대가 거세다. 이 법에는 기업 합병 때 걸림돌이 되는 주식매수청구권 기간을 줄이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어 기업의 사업 재편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재계에서는 이 법이 통과될 경우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이 다시 한 번 추진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으나 야당의 반대로 무산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크다.
◇노동시장 개혁 시간이 없다=노동계의 반발에 부딪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노동시장 개혁도 정부가 화급히 이뤄내야 할 숙제로 분류된다. 특히 한국 경제의 장기 성장 여력이 점차 주저앉고 있어 노동시장 개혁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천두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한국의 추세성장률(GDP 성장률 장기 평균)이 세계 금융위기 이전인 2000~2007년 4.7%에서 금융위기 이후 2010~2014년 3.5%로 하락하고 있다"며 "노동시장을 중심으로 구조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노동시장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모두가 공감하고 있지만 이와 관련한 논의는 여전히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노총은 노동개혁 문제를 다루는 노사정위 테이블을 박차고 나온 데 이어 최근에는 "임금피크제 도입보다 재벌개혁이 먼저"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정부의 압박 속에 전 계열사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안을 일제히 발표했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결코 쉽지 않은 문제"라며 "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이 문제를 풀어나가지 않으면 기업들은 노동시장이 유연한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