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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사설/4월 13일] 폴란드의 저력

영국의 역사학자 노먼 데이비스는 폴란드 역사를 집대성한 책의 제목을 '신들의 운동장(God's Playground)'이라고 붙였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비행기 추락 사고로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 등 폴란드 주요 인사들을 포함해 97명의 탑승객이 모두 사망했다. 비극적인 역사로 점철된 폴란드가 또 한번 잔인한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어느 나라나 이러한 대형 사고를 맞게 되면 큰 충격을 받게 된다. 그러나 폴란드 역사의 산증인인 희생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영국 런던에서 45년간 지속된 폴란드 망명정부의 마지막 대통령(1989~1990년)인 리샤르트 카초로프스키가 비행기에 탑승해 있었다. 반(反)공산주의 성향의 망명정부는 1990년 최초의 자유선거 실시를 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단스크 조선소의 노동자이자 반정부 운동가인 안나 발렌티노비치도 비행기에 있었다. 폴란드 연대노조의 설립은 1980년 그가 해고된 것을 계기로 시작됐다. 카친스키 대통령 역시 연대노조 지도자 출신이다. 이처럼 과거에는 폴란드를 다시 세웠고 지금은 폴란드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운명을 함께 했다. 카친스키 대통령 및 주요 인사들은 '카친 대학살 70주년 추모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러시아로 가던 중이었다. 카친 대학살은 폴란드를 침공한 소련이 1940년 2만여명이 넘는 폴란드인을 무자비하게 살상한 사건이다. 비극의 주인공들을 기념하려고 하다가 자신이 그 주인공이 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비극이 지금 폴란드에 미칠 영향이다. 폴란드는 동요해서는 안 된다. 이번 일을 계기로 러시아와 긴장 수위가 높아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의 죽음은 폴란드 국민을 다시 뭉치게 하고 있다. 수많은 국가 주요 인사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폴란드 정부기관들은 무리 없이 작동하고 있다. 헌법에 의해 대통령의 권한도 국회의장에게 위임됐고 60일 내에 새 대통령을 선출하게 될 것이다. 중앙은행도 이상 없이 운영되는 것이 확인됐다. 그 어떤 말로도 폴란드를 위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폴란드는 그러나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폴란드 역사에서 그간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로 이러한 위대한 저력이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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