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채무자 재산명시·조회제' 겉돈다

거부해도 법원인력 부족으로 감치 엄두도 못내<br>채권자, 금융기관 지정해야 조회 가능한데다<br>허위 밝혀져도 '솜방망이 처벌'로 효과 적어

신용사회 구축 차원에서 재산 빼돌리기 등 악성 채무회피 행위를 막기위해 만든 ‘채무자 재산명시 및 조회제도’가 겉돌고 있다. 채권자가 강제집행 판결을 받으면 법원은 민사집행법에 따라 채무자에 대해 재산명시 명령을 내리고 이를 어기는 채무자를 최대 20일간 감치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채무자가 재산명시를 거부하기 일쑤고 재산명시를 하지 않아도 법원은 집행인력 부족 등으로 제대로 된 감치는 엄두도 못내고 있는 실정이다. 재산명시 불이행시 채권자는 재산 조회를 할 수 있지만, 재판에 앞서 채무자는 자기 명의 재산을 다른 명의로 이전해 버린 경우가 많고, 따라서 채권자가 조회대상 금융기관 등을 일일이 특정해야 하기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은행 등 제 1금융권부터 대부업체에 이르기까지 수백개에 달하는 금융기관에 대해 채권자가 일일이 조회 신청을 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금융기관 등의 채권집행 재판을 전문으로 하고있는 푸른 법률사무소 관계자는 23일 “재판을 통해 채권 시효를 5년(거래 발생일 기준)에서 10년(확정 판결일 기준)으로 늘릴 수 있지만 채무자가 재산명시를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고 재산조회도 실효성이 없어 거의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12만여건의 재산명시가 있었지만 이중 조회건수는 1,895건으로 1~2%에 그치고 있다. 더군다나 채무자 재산명시와 조회절차를 거치더라도 허위 신고 여부를 판단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분석이다. 대법원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채무자 재산파악을 위한 조회제도가 있지만 그 기능이 제한적이어서 사실상 미신고 재산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채권자가 알아서 채무자의 숨겨진 재산을 파악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채권자가 허위신고 사실을 밝히더라도 법원이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민사집행법에 따르면 허위신고 채무자는 징역 3년 이하 및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있다. 하지만 지난 2004년 7월부터 2006년 6월 30일까지 2년간 허위신고로 34건의 형사처벌이 있었지만 징역형이 선고된 사례는 단 2건 있었다. 이마저도 사기ㆍ횡령 등 다른 범죄 혐의가 드러나 병합범으로 징역 선고를 받은 것을 감안하면 모두 벌금 부과로 마무리한 셈이다. 대법원과 법무부는 지난해부터 채권집행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히면서도 ‘검토중’이란 말만 되풀이하는 등 늑장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신용사회 구축을 위해서라도 민사집행법을 손질해야 하지만 로스쿨 등 다른 사법개혁 현안에 밀려 본격적인 개정작업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 관계자도 “채권집행의 실효성 제고를 위해 재판 이전에 재산조회를 실시하는 방안 등을 생각하고 있지만 다른 업무보다 우선 순위에 밀려 구체적인 추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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