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그들만의 비밀'에도 숱한 로비… 불신·무책임 키워

■ KB 사태로 본 대한민국 '밀실행정'


제재심의위·공직자윤리위 등 참석자도 회의 내용도 비공개

바깥 로비 막기 위해서라지만 알사람 다 알아 인맥·파벌 조장


문제 터지면 원인 규명 어렵고 정부 발표에도 국민들 안믿어


"이제야 KB 쪽에서 연락이 줄었어요. 그동안 어찌나 연락을 하던지…."

금융감독원장이 금융회사나 임직원의 제재 수위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자문기구인 제재심의위원회. 총 9명인 심의위원 가운데 외부인사 6명의 이름은 공개되지 않는다.

비공개는 바깥 로비를 차단해 공평무사한 결정을 하겠다는 명분 때문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KB국민은행장의 제재 수위를 결정하는 동안 제재심위는 KB 측으로부터 숱한 접촉을 받았다는 게 일부 위원의 솔직한 말이다. 명단 비공개가 실제로는 중요 결정 사안에 대한 책임 소재만 흐릿하게 만드는 구실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의 모든 활동과 정보를 공개하는 '정부 3.0'을 내세운 박근혜 정부에서도 권위주의 정부의 관행인 밀실행정은 여전하다.


그 결과 의사결정 과정을 검증할 수 없고 추후 문제가 나타나도 그 원인을 규명하기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 발표에 대한 대국민 신뢰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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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KB 사태는 금융 당국의 밀실행정이 당사자의 반발을 키운 단적인 예다.

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를 둘러싼 부당행위에 대해 금융 당국은 중징계, 경징계, 다시 중징계로 입장을 수시로 바꿨다. 특히 중징계가 경징계로 바뀌는 과정에서 로비가 득세했다는 의혹이 있다.

금감원은 제재위원 명단과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으면서 의혹을 더 키웠다. 실제 제재심위 위원 중 한 위원은 KB금융을 변호하는 로펌에 근무한 경력이 있고 과거 임 회장과 이 행장과 일했던 관료나 연구원 출신도 있다. 한마디로 그 자리에 있지 말아야 할 인물이 버젓이 활동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국회 정무위원회 관계자는 "이해관계가 있는 제재위원을 배제하는 기피제도가 있지만 실행된 적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경징계가 중징계로 제재 수위가 바뀌는 과정에서 관료들의 눈치 보기가 작용했을 거란 각종 구구한 해석이 나오는 것도 회의록이 공개되지 않는 데 그 원인이 있다.

금융위가 공개하는 회의록에는 고작 안건과 의결 여부만 나온다. 제재위원별로 어떤 견해를 냈는지에 대한 검증 자체가 불가능하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금융위의 일부 위원은 '의견 없음'을 의견으로 내기도 했다"면서 "금융 당국에 결정권을 넘긴 셈"이라고 귀띔했다.

밀실행정은 금융계뿐만 아니라 전 분야에 퍼져 있다. 공직자윤리위원회는 고위 공무원이 퇴직 후 민간기업이나 산하기관에 재취업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다. 그러나 관피아 논란이 불거지고 재취업 기준을 높이는 와중에도 퇴직 관료들이 공직자 윤리위를 통과해 재취업하는 사례가 등장해 논란이 일었다.

의혹을 해소하려면 어떤 이유로 통과했는지 살펴봐야 하지만 공직자윤리위는 회의록은 물론 윤리위원 명단을 감추는 데 어려움이 없다. 고위층이라면 이런 명단 입수가 어렵지 않아 로비는 로비대로 벌이고 책임은 피해갈 수 있다. 이런 비밀주의·밀실행정이 인맥과 파벌을 키우는 토양이 되고 있는 셈이다.

회의록이 공개돼도 토의 내용은 알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나랏일을 결정하는 최고 회의인 국무회의도 그렇다. 국무회의의 회의록은 참석자 명단과 안건을 소개하는 게 대부분이고 토의 내용은 '이견 없음' '원안 가결'이라고 적혀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나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회의록을 통한 구체적인 논의 내용은 알 수 없다. 검찰의 검사장 회의, 국방부와 경찰청의 지휘관 회의는 아예 회의록 공개 대상도 아니다. 전진한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은 "회의록은 국민의 알 권리와 기록 보존을 위한 것"이라며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회의가 요식행위거나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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