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1등을 달리는 수재가 있다. 2등과 격차가 너무 현저하면 1등은 영원할 것처럼 보인다. 도저히 따라잡기 어려운 존재로 모두가 인정해 버린다. 그런 1등이 어느날 추락하면, 본인 못지 않게 주변이 놀란다. 결코 일어날 것으로 상상도 하지 않은 사건이 던져주는 충격이다. 시간이 지나면 충격이 걷히며 현실감이 오게 마련이다. 「우째 이런 일이…」에서 「왜 그랬을까…」로 반전한다. 「전쟁」이라는 비즈니스의 세계도 마찬가지다.PC의 종가이면서 PC사업에서 밀려난 IBM의 사례는 너무 진부하다.
「SW의 황제」로 일컬어지는 빌 게이츠. 그가 이끄는 마이크로소프트도 요즘 2등의 징후를 보인다. 빌 게이츠가 코흘리개 아마추어로 무시했던 리눅스(LINUX) 때문. 리눅스 서버는 벌써 「윈도NT」를 따돌리고 시장을 절반 이상 차지해버렸다. 전문가들은 「21세기에 빌 게이츠는 없다」고 단언한다.
전세계 PC용 CPU(중앙처리장치)시장을 사실상 독식하고 있는 인텔. 이 역시 저가 PC시장에선 AMD로부터 턱 밑까지 추격당하고 있다. 컴팩은 IBM의 대를 이어 세계 PC시장의 대권을 물려받았다. 컴팩도 요즘 E-머신즈에 혼쭐이 나자 제소라는 칼을 빼들며 신경질을 부린다.
「한국통신」 하면 국내 통신시장의 절대 강자로 통한다. 통신업체들은 경쟁 구도에서 한국통신을 아예 제외해놓을 정도였다. 거함(巨艦)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한국통신도 2등으로 추락하는 징후를 보이기 시작한다. 초고속 인터넷시장에서 하나로통신은 지난 8월25일 현재 가입자가 5만5,000명. 한국통신은 고작 1,200명 정도다. 위성인터넷시장에서 한국통신이 확보한 ID는 616개. 삼성SDS는 그 10배가 넘는 6,474개다.
그 뿐일까. 이달중 휴대폰 전체 인구가 한국통신의 전화 가입자수를 앞지른다. 한국통신의 전화가입자 2,100만명은 결코 깨질 수 없는 철벽처럼 보였다. 100년간의 1등이다. 그러나 앞으론 휴대폰 밑으로, 2등으로 밀려난다. 통신사업의 「과거」인 전화에서 2등으로 떨어지는가 하면, 통신사업의 「미래」라는 인터넷에서도 쉽게 1등 차지를 못하는 한국통신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왜 그럴까…」 그에 대한 원인 분석과 처방은 한국통신 자신의 몫이다. 문제는 「위기」라는 경고등이 이미 오래전에 켜졌다는 점이다. 위기감은 그 신호가 올 때 더한 법이다. 정작 위기 상황에 놓이면 망각이 시작된다. 무감각해진다. 한국통신도 그런가.
한국통신 사람들은 공기업이기 때문에 「제약이 많다」고 불만이 많다. 그러나 공기업이기 때문에 받은 혜택도 그만큼 있다. 통신시장이 활짝 개방되는 국면에서도 한국통신은 외국인이 경영권을 잡지 못하도록 철저히 보호받았다. 개인휴대통신(PCS)사업권은 거저 얻다시피 했다. 정부는 기회있을 때마다 「한국통신이 국가대표」라는 상징을 선사해 줬다.
한국통신은 올해만 1만5,000명을 감원한다. 스스로 뼈를 깎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2등이 되기 시작한다. 자회사인 한국통신프리텔은 지금 이동전화 후발주자중 단연 선두. 한국통신프리텔 사람들은 대부분 과거 한국통신 사람들이었다. 한국통신의 부진은 「구조의 문제」이고, 한국통신프리텔의 선전은 「사람」 때문인가. 하지만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었다.
깨어나라 한국통신.
이재권 산업부차장JAYLE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