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발렌베리'를 주목하는 이유

[기자의 눈] '발렌베리'를 주목하는 이유 이규진/산업부기자 sky@sed.co.kr 5대째 경영권을 세습하며 은행을 포함해 항공ㆍ통신ㆍ엔지니어링ㆍ제약ㆍ가전ㆍ호텔 등 100여개 회사를 거느린 재벌. 국내총생산(GDP)의 30%, 주식시장 시가총액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대기업 집단.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과 산하 기업인 사브ㆍ에릭슨ㆍ스카니아ㆍ일렉트로룩스ㆍSEB를 일컫는 말이다. 만약 한국에 발렌베리 가문과 이들 기업들이 있었다면 시민단체와 국민들은 뭐라 할까. 십중팔구 ‘경제력 집중 해소’ ‘부의 세습 반대’ 목소리가 들끓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17일 스톡홀름에서 만난 스웨덴 시민들의 반응은 딴판이다. 알란다 공항에서 함께 스톡홀름행 버스를 탄 쉘 페터슨씨. 앞좌석에 앉아 있던 페터슨씨는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기자가 묵을 호텔을 안내해주겠다며 앞장섰다. 뜬금없이 “발렌베리 가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스웨덴의 산업화를 이룬 사람들이죠. 당연히 존경합니다”라고 받았다. 취재기간 만났던 노총과 근로자ㆍ학자ㆍ시민들 역시 페터슨씨와 다르지 않았다. “발렌베리는 국가적 부를 창출해 일자리를 만들고 사회보장을 이루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 입을 모았다. 발렌베리 가문이 이렇게 전국민적인 지지와 신뢰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문은 스톡홀름에서 남쪽으로 18km 떨어진 유명 휴양지 샬트셰바덴에서 풀렸다. 아름다운 호수가 한 눈에 들어오는 그랜드호텔 2층 회의실. 기자를 안내해준 호텔 관계자는 “이곳이 지난 1938년 사회적 대타협의 대명사인 ‘샬트셰바덴 협약’을 한 역사적인 장소”라며 알려줬다. 당시 발렌베리는 스웨덴경영자연합(SAF)과 스웨덴노동조합(LO) 대표를 초청해 근로자들은 기업주들의 지배권을 영구 보장하고 기업주들은 기업이익금의 85%를 사회보장 재원(법인세)으로 내놓기로 하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극심한 노사갈등으로 기업주와 노조대표들을 납치해 살해하기도 했던 당시 상황에서는 매우 극적인 반전이었다. 이 협약 이후 발렌베리 가문은 안정적인 지배권과 노사화합 속에서 생산적 투자에 더욱 집중해 볼보를 비롯한 에릭슨ㆍ스카니아 등 세계적 기업들을 키워냈다. 산업화의 일등공신으로 오늘날 스웨덴을 복지국가로 만드는 한 축이 된 것이다. 물론 또 다른 축은 기업주들에게 경영권을 주는 대신 경제발전과 일자리 창출을 맡기고 합심한 스웨덴 근로자들과 국민들이다. 샬트셰바덴을 떠나며 반기업ㆍ반재벌이 아니라 ‘파이’를 키울 수 있도록 마음껏 멍석을 깔아줬던 당시 스웨덴 국민들의 장기적인 안목과 대승적 판단에 강한 부러움을 느꼈다. 70년 전에 그들은 상생의 길을 찾았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에 돌아와 삼성특검 소식을 들을 때마다 샬트셰바덴이 자꾸 눈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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