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0월10일] 캐번디시


캐번디시연구소. 영국 기초과학의 메카다. 배출해낸 노벨 물리ㆍ화학상 수상자만도 29명. 현대과학의 최대 업적으로 꼽히는 DNA의 이중나선구조도 여기서 밝혀졌다. 연구소에 이름을 붙인 헨리 캐번디시(Henry Cavendish)는 사후에 더 높은 평가를 받은 과학자다. 수소의 발견자. 캐번디시에게는 태어날(1731년 10월10일) 때부터 돈이 따라다녔다. 양친이 모두 공작 가문인데다 후손이 없던 친척에게 거액을 상속 받아 ‘식자(識者) 중 최고 부자이며 부자 중에서 가장 식자’로 불렸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4년을 배우고도 시험을 치르기 싫어 졸업장을 따지 못한 것은 배가 불렀던 탓인지 모른다. 학위는 없었지만 그는 1766년 발표한 논문 ‘인공 공기’로 이름을 날렸다. ‘물은 산소와 수소의 결합’이라는 발견이 요즘에야 당연하게 들리지만 당시로서는 사고의 근본 틀을 깨는 대사건이었다. 고대 그리스 이래 수천년 동안 물은 한 종류의 원자로 만들어진 원소라고 생각해왔으니까. 비록 수소를 ‘불타는 공기’라고 불렀어도(수소의 명명자는 프랑스대혁명 와중에 처형 당한 라부아지에) 수소가스 발견은 기체화학과 원자물리학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막대한 재산을 과학에 쏟아 부은 그는 저택을 영국에서 손꼽히는 천문대이자 연구소로 꾸며 연구에 매달렸다. 문제는 성과의 대부분을 발표하지 않았다는 점. 쿨롱의 법칙과 옴의 법칙을 그가 13~45년 먼저 발견했다는 사실도 사망(1810년ㆍ79세) 후 한참이 지난 뒤 유품과 유고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사라졌던 업적을 되살린 것은 후손. 케임브리지대 총장으로 부임한 그의 조카가 막대한 자금을 기부해 캐번디시연구소를 세운 덕분이다. 가문과 돈의 힘이 잊혀졌던 구슬 서말을 꿰어 보물로 만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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