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6월 10일] 쇠고기 파동의 가해자와 피해자

‘행복은 대중의 주머니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늘 개미만 피해를 본다는 증시의 격언이지만 일상생활에서도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번 쇠고기 파동도 그렇다. 지난해 5월 서대문역 근처에 수입 쇠고기 전문점을 낸 K씨는 운이 지지리도 없는 사람이다. 뼈 없는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 재개되면 가격파괴형 수입 쇠고기 전문점들이 호황을 누릴 것이란 전망에 창업을 했지만 몇달 만에 된서리를 맞았다. 미국산 쇠고기에서 등뼈가 발견되면서 검역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지난해 10월부터 호주산 쇠고기로 바꿔 장사를 계속했지만 역시 몇개월 못 가 업종을 바꿔야 하는 홍역을 치러야만 했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전면적인 수입개방과 함께 광우병 파동, 쇠고기 자체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호주산 역시 매출이 급감한 탓이다. 불운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고심 끝에 두달 전 돼지갈비집으로 전업했지만 돼지고기 값이 너무 올라 한숨만 내쉬고 있다. 지금 생계형 외식창업 시장에 이런 불행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외식창업 시장에서 선호도 1순위는 단연 수입 쇠고기 전문점이었다. 값싼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면 외식시장의 구도가 가격파괴형 수입 쇠고기 전문점으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졌고 프랜차이즈 업체들도 경쟁적으로 체인점 모집에 나섰다. 이 열풍에 퇴직자금으로 수입 쇠고기 전문점을 낸 사람과 업종을 전환한 음식점들이 적지 않다. 누구도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재개 몇개월 만에 검역 중단되고 광우병 파동으로 언제 다시 수입이 재개될지 기약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제 그 안타까움이 수입 쇠고기를 넘어 한우를 파는 음식점과 곱창ㆍ막창집으로 확산되고 있다. 조류 인플루엔자(AI) 공포로 치킨 업계와 오리전문점들이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한우와 곱창을 파는 곳들도 신음하고 있다. 신도림의 한 오리전문점은 개업한 지 한달 만에 문을 닫았고 그 옆 곱창집은 신장개업이라는 플래카드를 내건 지 오래지만 영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이 곱창 같은 내장에 많이 들어 있다는 내용이 퍼지면서 장사를 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고급육을 파는 대형 음식점들은 자리를 잡지 못할 정도로 호황이다. 등심 1인분(180g)에 5만4,000원, 꽃등심 1인분에 7만4,000원 하는 곳은 이번 파동으로 오히려 매출이 늘었다. 피해를 보고 있는 곳은 등심 1인분에 1만4,000원에서 2만5,000원 하는 생계형 음식점들로 이는 대통령이 기대했던 바와는 정반대의 양상이다.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 “질 좋은 고기를 들여와 일반 시민들이 값싸고 좋은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아직 그 쇠고기가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시장에는 비싼 쇠고기만 팔리는 양극화가 고착화되고 있다. 성과에 급급한 정부의 성급한 결정은 항상 엉뚱한 피해를 낳았다. 지난해 아파트 경비원 등의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법이 시행되면서 아파트 경비원이 줄줄이 해고되고 비정규직법이 비정규직의 일자리를 빼앗은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졌듯 이번 파동도 애꿎은 피해자만 양산하고 있는 꼴이다. 모두 정부가 자초한 화(禍)다. 30개월 미만 미국산 쇠고기에 등뼈가 붙어 있다고 검역을 중단했다가 어느 순간 뼈도 있고 30개월이 넘어도 괜찮다고 하는 논리가 이해될 수 있을지를 먼저 따져봐야 옳았다. 그렇게 하지 않았던 성급함이 광우병 파동과 촛불시위를 야기했다. 경기불황이 닥쳐오는데 정부의 급한 결정과 합의가 또 다른 양극화와 어두운 그늘을 만들어가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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