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발언대/12월 7일] 서방 경제 따라잡기의 그늘

우리는 제헌 이래 성과 위주의 초고속 압축성장으로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초단기에 서방경제 강국들을 따라잡았다. 개도국을 돕는 유엔개발계획(UNDP)은 지난해 말 한국에서 깃발을 내리고 철수했다. 이는 한반도가 서방원조 수혜국에서 벗어나 공여국으로 바뀐 것을 의미한다. 또 유엔 가입 19년 만에 세계최강국 20개국의 정상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주재하는 좌장이 됐다. 이처럼 우리는 60년 전 전쟁의 폐허더미에서 개발주도 산업화와 더불어 민주화에도 성공하며 선진국 반열에 당당히 올라섰다. 그러나 이 같은 성장 가도를 달리며 '서방 따라잡기'에 올인한 나머지 소홀히 한 것과 잃어버린 것은 없는지 주변을 돌아보며 자기성찰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했다. 나만 잘되려고 내달리지 않았나. 내 밥그릇만 챙기려고 반칙하지는 않았나. 세간에는 '헝그리(hungry)정신' 뒤에 '앵그리(angry)정신'이 팽배하다는 얘기도 나돈다. 허리띠를 졸라매 배고픈 것은 참았지만 반칙과 새치기ㆍ비리ㆍ특권ㆍ특혜 등으로 배부른 것은 참지 못하는 불신과 불만이 우리 사회에 내재돼 있는 것이다. 신라 진평왕 때 설계두는 혈통의 높낮이에 따라 관직진출의 한계를 규정한 골품제도로 실력이 출중해도 겨룰 기회조차 없자 당나라에 가서 대장군에 추존됐다. 재일교포 유도선수 추성훈은 한국에서 아무리 잘해도 한판승이 아니면 이길 수 없었다. 판정에는 파벌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일장기를 달고 한국대표와 결승전을 치렀는데 판정이 공정해 승리했다고 한다. 두 사람이 선택한 사회는 바로 공정한 사회였다. 공정한 사회는 기회균등의 사회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다. 개천에 물이 없으면 물을 대 용이 되도록 키우는 사회다. 난해할지 모르지만 '절차적 공정성(procedural justice)'을 보자. 실력 있는 사람을 가려낼 수 있는 절차가 공정한 절차다. 그 절차로 실력 있는 사람을 가려내야 공정성이 실질적으로 확보된다. 공직자든, 사업가든 정해질 룰에 따라 절차와 결과가 공정한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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