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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출전통보 전화, 기다릴 필요 없게 됐어요."
전지훈련 중인 미국 현지 시간으로 자정이 다 됐지만 수화기 너머 김지현(22ㆍCJ오쇼핑)의 목소리에서는 홀가분함이 묻어났다.
지난해 11월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2013시즌 시드전에서 1위를 차지한 김지현은 2년 동안 눈물 젖은 빵을 먹었다. 지난 2010년 데뷔한 뒤 투어카드를 잃어 2011년과 2012년을 결원이 생긴 대회에만 출전할 수 있는 대기선수 신분으로 보내야 했다. 퀄리파잉(Q)스쿨 격인 시드전에서 합격선인 50위를 살짝살짝 벗어나는 불운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2011년 말 시드전 때는 최종 4라운드 중반까지도 안정권을 유지하다 볼을 물에 빠뜨리는 실수로 더블보기를 범하면서 흐름을 놓쳐 53등을 했다.
2012시즌에는 '후보 3순위'로 22개 중 7개 대회에 나갔지만 늘 개막 직전 통보를 받았다. 언제 출전할지 모르는 처지였기에 정규 멤버 선수들과의 경쟁은 쉽지 않았다. 기회가 왔을 때 잘 쳐야 한다는 조급증과 부담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분위기가 바뀐 건 지난해 8월 출전기회를 얻은 한국여자오픈 때부터다. "나쁜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꿔 생각하니 잘 풀렸어요. '대회를 덜 뛰는 내가 체력적으로 유리해. 연습할 시간도 더 많잖아'하는 식으로요."내셔널타이틀이 걸린 그 대회에서 김지현은 최종일 김자영, 이미림과 함께 챔피언 조에서 우승 다툼을 벌인 끝에 생애 최고 성적인 5위를 차지했다. 이번 2013시즌 시드전에서도 목표를 '50위 이내'가 아닌 '욕심 버리기'로 잡았다. 결과는 수석 합격이었다.
삼수 끝에 김지현은 요즘 KLPGA '대세'인 1991년생 절친들과 마침내 다시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2012년 3승을 거둔 김자영(정관장)과 서울경제 여자오픈 챔피언 이정민(KT)을 비롯해 우승 경험이 있는 정연주(CJ오쇼핑), 조윤지(하이원), 동명이인 김지현(웅진코웨이) 등은 종종 모여 수다를 떠는 동갑내기들이다. "친구들이 우승하면 진심으로 축하해주면서도 스스로에게 화가 났었다"는 그는 "조금 늦었지만 친구들처럼 우승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턱을 넘기가 힘들었을 뿐 김지현은 잠재력이 큰 선수로 평가된다. 초등학교 시절 매년 전국대회 금메달을 놓치지 않았던 쇼트트랙 스케이팅으로 단련된 탄탄한 근력과 밸런스, 170㎝의 키, 시원스런 이목구비까지 스타의 조건을 두루 갖췄다. 골프 실력도 뛰어나다. 같은 매니지먼트 회사 소속인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의 '쇼트게임 달인'김대섭(32ㆍ아리지CC)이 가능성을 인정하고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2주 전부터 미국 로스앤젤레스 전지훈련을 함께하며 김지현의 약점인 어프로치와 퍼트 등 쇼트게임을 가르쳐주고 있다. 김대섭은 지난해 김자영에게 쇼트게임을 지도해 강자로 변신시켰다.
드라이버와 우드, 아이언 샷이 수준급인 김지현은 오전5시30분 기상해 쇼트게임 보완과 체력 훈련 위주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어프로치 때 머리의 위치 같은 기본부터 교정하고 있는데 벌써 효과가 나타나고 있어요. 이제는 기다림 없이 모든 대회에 나가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돼 정말 기뻐요. 도전할 기회가 많아진 만큼 꼭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