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는 전세계적으로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를 겪었다.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투자은행 중심의 금융 패러다임은 심각한 도전에 부딪혔고 파생상품의 무분별한 증식은 규모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금융부실을 낳았다.
이로 인해 금융기관 간에 불신이 고조돼 유례없는 금융경색을 가져왔고 이의 타개책으로 미 연방준비위원회(FRB)는 제로금리 정책을 통해 달러 유동성을 무제한 방출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신용경색은 좀처럼 가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이에 따라 최근에는 국제금융의 새로운 대안으로 이슬람 금융이 주목 받고 있다.
대부·차용자가 위험·책임 공유
금융은 대부자와 차용자 간의 신용을 바탕으로 한다. 이는 금융이 차용자의 사업전망이나 신용에 대한 믿음 없이는 성립될 수 없음을 뜻한다. 오늘날 글로벌 금융위기는 기초자산과 분리된 파생상품의 확대 재생산을 통해 위험과 책임을 무분별하게 전가한 데서 비롯됐다.
이에 비해 이슬람 금융은 이슬람 율법상 실물과 무관한 순수한 자본거래가 금지되고 술이나 도박 같은 비윤리적 사업에의 투자나 불확실한 투기적 거래 등이 금지된다. 이는 대출자가 차용자를 불신하고 차용자는 부실을 감추기에 급급한 오늘날의 금융위기 상황에서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준다.
특히 이슬람 금융에서는 이자(riba) 수취가 금지되기 때문에 금융회사는 차용자가 사업을 통해 창출한 수익을 분배 받는 형식을 취하게 된다. 이로써 금융회사는 차용자의 신용과 사업성을 철저히 평가하고 흑자경영을 위한 협업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실물경제에 대한 책임을 분담한다. 이처럼 대부자와 차용자가 동등한 사업 파트너로서 모든 위험과 책임을 공유하며 이를 극복하는 방식의 금융기법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매우 크다 하겠다.
최근 이슬람 금융은 오일달러 급증에 힘입어 이슬람권으로부터 전세계로 확산되는 추세다. 근대적 형태의 이슬람 금융은 지난 1960년대 시작돼 2000년 이후 유가상승에 편승, 매년 15% 이상의 높은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2004년에 265개였던 이슬람 금융기관 수는 2009년에 약 600개로 확대되고 이슬람 금융자산도 오는 2010년에는 1조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와 같은 아시아 국가인 말레이시아의 경우 일찍이 1980년대 초부터 풍부한 중동 자금에 눈을 돌려 이슬람은행법을 제정했고 동아시아 최초로 이슬람은행을 설립했다. 2002년에는 범이슬람권 금융감독기구인 IFSB의 본부를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에 유치했다.
한편 비이슬람권 국가 중 이슬람 금융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영국이다. 영국은 약 19조달러에 달하는 전체 금융자산 가운데 이슬람 금융 관련 자산이 100억달러에 이를 정도로 이슬람 금융이 보편화돼 있다. 특히 2004년에는 이슬람 금융 전문은행인 IBB(Islamic Bank of Britain)가 설립됐고 최근에는 2012년에 개최될 런던올림픽 자금조달을 위해 이슬람채권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중동권 자금 조달 적극 나서야
또한 일본에서도 최근 이슬람 금융에 대한 관심이 고조돼 G7 국가로는 처음으로 정부 산하 일본국제협력은행(JBIC)이 3억달러 내외의 이슬람채권 발행계획을 발표했으며 지난해 6월에는 이슬람 금융을 도입하기 위한 은행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13~14일에 서울에서는 처음으로 이슬람 금융에 관한 세미나가 열린다. 이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주요 금융 관련기관과 이슬람금융감독기구인 IFSB가 이슬람 금융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공동 개최하는 것이다.
이번 회의가 단순히 오일머니 유치 차원을 넘어 우리를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과 이슬람권 국가들 간의 탄탄한 신뢰 회복 및 경제협력의 계기가 됨으로써 지난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우리 경제를 다시 일으킬 의미 있는 전환점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