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은 지난 5월 서울 이태원동 승지원에서 제임스 호튼 미국 코닝 명예회장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삼성과 코닝이 합작사업을 시작한 지 40년이 됐고 사업 규모가 큰 폭으로 성장한 것은 물론 협력 분야도 신기술 개발과 기술 교류 등으로 확대됐다"며 "앞으로 윈윈 협력을 계속해나가자"고 말했다.
그로부터 다섯 달 후인 23일 삼성디스플레이는 삼성코닝정밀소재 지분 전량을 코닝에 넘기고 코닝의 전환우선주를 인수해 코닝의 최대주주가 되는 내용의 계약을 맺었다. 이 회장과 호튼 명예회장이 논의한 윈윈 협력 방안이 구체적인 결실을 맺은 것이다.
삼성은 이번 계약으로 7년 뒤 코닝의 최대주주 자리를 예약하면서 소재 분야의 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삼성은 현재 그룹 차원에서 소재 분야 경쟁력 제고에 힘을 쏟고 있다. 휴대전화ㆍTV 등 완제품과 부픔은 이미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으나 소재 분야는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판단에서다. 이 회장도 "삼성의 5년, 10년 후를 책임질 신수종사업과 소재사업의 경쟁력을 키우는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올 들어 삼성전자가 일본 샤프의 지분 3%를 취득하고 삼성전자와 제일모직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소재업체 노바엘이디를 인수하기로 한 것도 모두 소재사업 경쟁력 확보 차원이다. 이런 상황에서 160년 전통의 세계적인 기업인 코닝은 삼성에 든든한 협력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삼성으로서는 코닝과의 기술 협력을 통해 강화 유리(고릴라 유리)와 플렉서블(휘는) 유리, 광섬유 등 소재분야 경쟁력 확충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대신 삼성은 삼성디스플레이가 보유한 삼성코닝정밀소재 지분 전량을 코닝에 넘기지만 이 회사가 주로 생산하는 LCD 기판유리의 성장성이 정체된데다 장기공급계약을 통해 안정적인 공급을 약속 받아 큰 문제는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박원규 삼성코닝정밀소재 사장은 이날 임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이번 계약의 배경으로 LCD 수요가 정체된 점을 꼽으면서 "LCD 기판유리 추가 생산과 코닝의 고릴라 유리 생산으로 설비가동률과 인력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재계는 이번 계약으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처남인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삼성코닝정밀소재 지분이 모두 정리되는 데 주목하고 있다. 코닝은 삼성디스플레이와 홍 회장이 보유한 삼성코닝정밀소재 지분을 전량 인수해 이 회사의 경영권을 확보하게 된다.
이로써 홍 회장과 삼성그룹 간 연결고리가 모두 끊어지게 되는 셈이다. 이에 재계 일부에서는 앞으로 삼성의 전자 계열사를 이끌게 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향후 행보를 원활히 하기 위해 외삼촌인 홍 회장의 지분을 사전에 정리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홍 회장은 삼성코닝정밀소재 지분 매각과 회사 보유 현금 배분 등으로 6,000억원대의 자금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삼성은 제일모직의 패션사업을 삼성에버랜드에 양도해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에버랜드의 덩치를 키웠고, 삼성SDS와 삼성SNS 합병을 통해 이 부회장의 삼성SDS 지분율을 끌어올린 바 있다. 모두 이 부회장 등 오너 3세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일련의 행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