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까다로운 고객' 모시기

어느 드라마 작가는 자기가 쓴 원고를 읽어보다가 자신이 울어버린 경우가 있다고 했다. 남을 울리기 위해서 쓴 글인데 자기가 먼저 울었다니, 아마 그 정도면 시청자도 울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건을 만들거나 팔 때 ‘나는 이 제품이 별로지만 누군가는 좋아해주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다면 그 물건은 팔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다른 어떤 경쟁사 상품보다도 당연히 내가 만든 바로 이 상품을 선택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고객도 그 물건을 알아볼 것이다. 반드시 베스트셀러ㆍ히트상품이 최고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대중의 취향을 제대로 읽은 상술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외로 간단하게 고객을 끌어들이는 방법은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있으면 된다. 그러나 ‘나’를 만족시킨다는 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우리는 점심메뉴 하나를 고를 때도 수도 없이 ‘자기 안의 까다로운 고객’과 갈등을 일으키고는 한다. 남의 옷은 쉽게 골라줘도 내 옷을 고를 때는 왜 그렇게 얼른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는 걸까. 정말이지 ‘나’는 얼마나 까다로운 고객인가. 그런데 우리는 그런 최고의 안목을 갖춘 내 안의 고객을 잊고 오히려 외부의 고객에게만 원망스러운 눈길을 돌리고 있을 때가 더 많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나나 우리 가족이 보지 않는 프로그램을 ‘그래도 누군가는 찾아서 봐주겠지’ 하는 기대는 내가 먹기 싫은 음식을 손님에게 내주는 일이나 다름없다. 재미는 없지만 그래도 유익한 프로그램임을 주장하고 싶다면 그건 시청자에게 정해진 시간에 ‘쓴 약’을 찾아먹듯 그렇게 TV를 보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우리의 위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고객과 판매자(혹은 상품)로서의 입장을 오간다. 엄밀히 보면 직장 내에서 구성원 하나하나도 일종의 상품이다. 내 상품가치에 따라 수입과 지위가 달라진다. 그리고 그 구성원들의 가치에 따라 조직 전체의 가치가 매겨진다. 구성원 입장에서는 ‘왜 내가 이런 대접밖에 못 받을까’ 하는 불만이 있기도 하지만 조직입장에서는 왜 고부가가치를 더 못 내주는지 아쉬워한다. 만약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란다면, 내 물건이 더 많이 팔리기를 바란다면 ‘내 안의 까다로운 고객’에게 끊임없이 물어보기를 권한다. 그 고객에게 확신이 있을 때, 분명 시장에서의 가치도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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