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3월1일] 어업전관수역

바다가 닫혔다. 1977년 3월1일 미국과 소련이 EC 9개 회원국에 이어 200해리 어업전관수역을 선포한다.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도 뒤를 따랐다. 드넓은 원양에서 마음껏 고기를 낚던 시대는 사라졌다. 타격을 입은 나라는 한국과 일본 같은 원양어업국. 한국의 피해가 특히 컸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와 함께 체결된 한일어업협정의 불평등 조항으로 일본어선에 연근해를 내준 후 집중 육성한 원양어업이 짭짤한 수익을 내던 상황. 신흥어업국 한국은 위기를 맞았다. 당장 캄차카 근해와 북양(北洋)에서 조업하던 109척의 원양어선 가운데 77척이 주어장을 잃었다. 어획고도 줄었다. 매년 40% 이상을 기록해온 원양어업의 성장률이 77년 15%에 그친 데 이어 78년에는 -28%로 주저앉았다. 원양어업의 피해는 꼬리를 물었다. 일본의 견제 탓이다. 일본은 북태평양 어장을 잃은 한국 원양어선단이 대안으로 선택한 홋카이도 주변의 공해 조업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다. 1979년에는 160척의 일본어선이 한국 트롤어선 9척에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조업을 방해한 ‘무로랑 사건’까지 일어났다. 원양어업의 판로도 막혔다. 한국배가 건져올린 고기를 사던 연안국들이 스스로 고기잡이에 나섰기 때문이다. 참치캔이 일반가정의 식탁에 오른 것도 이 무렵부터다. 무로랑 사건 직후 한일 양국은 자율적 규제라는 신사협정을 맺었지만 오래 못 갔다. 한일어업협정이 1996년 일본에 의해 일방적으로 깨진 후 상황은 더 나쁘다. 준비 없이 체결한 신한일어업협정으로 ‘대화퇴 황금어장’의 대부분을 상실하고 ‘쌍끌이’ 어업도 빼앗겼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채이고 깨지고…. 원양어업의 부침이 한국사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다. /권홍우ㆍ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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