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탱자나무를 촘촘히 심어 담장으로 삼은 시골집이 적지 않았다. 어른 키를 웃도는 높이에 가시가 많아 집 울타리로도 제격이지만 가을에는 향기로운 노란 열매가 운치마저 자아낸다. 이런 식의 담장을 뜻하는 마땅한 우리말은 없지만 영어로는 이를 헤지(hedge)라고 부른다. 이제는 일상어가 되다시피 했지만 위험 대비수단이나 행위를 뜻하는 헤지라는 말도 이러한 담장의 방어기능에서 연유된 것이다.그런데 최근 태국의 바트화 위기를 계기로 주목받고 있는 헤지펀드의 경우 어딘가 헤지라는 말이 걸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이들은 위험을 회피하기보다는 오히려 기회로 활용하는 전형적인 투기세력으로 알려졌듯이 방어적 성향보다는 공격적 성향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영국 등 여러나라의 외환위기를 몰고온 장본인들로 이들이 지목됐고 외환위기설에 시달리는 동남아국가들은 물론 국제금융시장이 이들의 동정파악에 부심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실상은 헤지펀드가 1백명 미만의 자산가들로 구성된 사적 투자클럽으로서 원래 남보다 앞선 투자기법의 개발을 통해 투자위험을 극소화(헤지)하려는 말 그대로의 헤지펀드로 출발했고 지금도 대다수 헤지펀드가 이러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오히려 최근 관심대상이 되고 있는 외환투기를 일삼는 헤지펀드는 소로스의 퀀텀펀드나 로버트슨의 타이거펀드 등 소수의 매크로펀드(macro fund)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경제와 국가별 거시경제동향에 대한 과학적 분석에 기초해 범세계적으로 투자자금을 운용한다는 점에서 「매크로」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이들 헤지펀드가 동원할 수 있는 자금규모는 웬만한 나라의 중앙은행들이 홀로 맞서기 힘들 만큼 막대하고, 신속한 의사결정과 뛰어난 정보분석력으로 외환투기에 성공하는 확률이 높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마치 헤지펀드가 식인상어와 같은 존재로 언론에 비쳐지고 있지만 상어와는 달리 아무나 공격하지는 않는다. 거시경제운영상의 착오로 금리, 환율 등 거시경제변수가 경제기초여건과 크게 괴리돼 있는 나라, 특히 국제수지 적자폭이 확대되는데도 환율에 거품이 일어 고평가된 나라들을 대상으로 한다. 우리 몸이 건강하면 병균감염도 크게 염려할 바가 없듯이 기초경제여건을 건실하게 만들면 헤지펀드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