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44년 6월 6일 이른 아침, 노르망디 해변에 바짝 다가선 2,000여명의 군인들이 숨을 죽이며 상륙 명령을 기다렸다. 명령이 떨어지자 연합군은 해변을 지키고 있는 독일군을 향해 총을 쏘며 적진으로 뛰어 들어갔다. '오마하 해변'이라는 작전명으로 미군의 육해 합병군이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에 상륙하는 순간이 카메라 렌즈에 포착됐다.
"총알이 나를 빗겨가 물을 때리고 있었고 나는 가장 가까이 몸을 숨겼다. 좋은 사진을 찍기에는 너무 이르고 어두웠다. 하지만 잿빛 바닷물과 잿빛 하늘은 군사들이 히틀러의 반침략 작전이 가져온 초현실적인 상황 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었다."
전설적인 종군 사진기자 로버트 카파(1913~1954)가 노르망디 상륙 작전 당시를 회고하면서 남긴 말이다. 당시 카파가 찍은 사진은 조수의 실수로 필름 상당 부분이 망가졌지만 기적적으로 남은 10장의 사진이 전쟁의 실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로버트 카파 탄생 100주년과 6.25전쟁 정전 60주년을 맞아 로버트 카파의 일대기를 총망라한 대표적인 사진 160여점이 오는 10월 28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선보인다. 그의 기념 재단인 뉴욕 ICP가 소장한 작품으로, 그의 동생인 코넬 카파가 직접 선택해 프린트한 오리지널 소장전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가장 유명하면서도 도덕적 논란을 불러 일으킨 '어느 공화파 병사의 죽음'은 1936년 스페인 내전 당시 전선에서 돌격하려던 그의 친구 병사가 머리에 총알을 맞고 즉사해 쓰러지던 순간을 찍었다. 순교자처럼 팔을 벌리고 약간 찡그린 표정으로 무너져 내리기 직전의 찰나를 포착한 것. 누군가가 죽는 순간을 카메라로 찍는 행위가 과연 도덕적인가를 놓고 수십 년 동안 뜨거운 논란이 일었지만 자기 희생과 위험을 무릎 쓴 취재 정신의 대명사가 된 '카파이즘'은 치열했던 작가 정신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는 치열했던 삶만큼이나 유명인들과 교류도 활발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어윈 쇼, 존 스타인벡과 함께 전쟁터를 누볐고, 피카소와 마티스 등 화가들과도 예술적 교감을 나누었다. 또 스페인 내전 당시 탱크에 치여 숨진 첫사랑 게르다 타로와의 뭉클한 사랑 이야기도 유명하다. 뛰어난 외모와 예술가적인 풍모 때문에 세계적인 여배우 비비안 리와 사랑에 빠지기도 했고, 잉그리드 버그만의 청혼을 뿌리친 일화도 있다.
1954년 5월 카파는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 상황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베트남으로 향했다. 두 명의 라이프지 기자와 함께 프랑스군을 취재하던 그는 군인들의 이동 모습을 가까이서 찍기 위해 지프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5분 후, 귀를 찢을 듯 커다란 폭발음이 났다. 카파가 지뢰를 밟은 것이었다. 그의 나이 41세, 병원에 도착하기 전 그는 숨을 거두었다. 카파는 그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인 게르다 타로와 똑같은 모습으로 저 세상으로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