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키(Rudder) 없는 배처럼 갈팡질팡하는 상태를 뜻하는 영화 제목 '러덜리스(Rudderless)'는 이 영화가 품은 모든 정서를 함축하는 단어다. 감당할 수 없는 비극에서 도망친 한 남자의 끝없이 휘청거리는 삶. 다행히 그는 음악을 통해 비극을 마주 볼 용기를 얻고, 그 용기로 다시 인생의 방향키를 그러쥐기에 이른다. 음악이 가진 힘과 가치를 다시 한 번 곱씹어보게끔 하는 진짜 음악영화다.
6명이 사망한 교내 총기사고로 아들을 잃은 샘(빌리 크루덥)은 깊은 상실감에 직업도, 집도 버린 채 요트에서 살기 시작한다. 일당 노역을 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술을 마시는 하루하루. 그러던 그에게 아들이 만든, 아들이 직접 부른 노래가 담긴 CD가 전해진다.
아들과 관계된 일들은 회피하며 살아왔던 샘이지만 CD에서 흘러나오는 아들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 노래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리고는 아마추어 뮤지션들이 모이는 클럽을 찾아 직접 아들의 노래를 부르기에 이른다. 그곳에서 그의 노래에 매료된 청년 쿠엔틴(안톤 옐친)을 만나고 둘은 밴드 '러덜리스'까지 결성한다. 동료들과 함께하는 무대는 즐겁고, 샘은 휘청이던 삶에서 조금씩 빠져나온다.
여기까지 영화는 평범한 음악영화의 전개를 그대로 따라간다. 비극을 겪은 한 인간이 음악을 통해 다시 희망을 찾는 이야기. 하지만 이후 영화는 숨겨왔던 비밀을 밝히는데, 바로 샘의 아들이 교내 총기사고의 주범이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파국을 부르고 예상치 못한 윤리적 질문까지 던진다. 살인자가 만든 음악에 취해도 되는 걸까.
영화는 이 질문에 대해 분명 '아니'라고 답하는 듯하다. 아들과 사귀었던 여자친구는 이 상황에 크게 분노하고, 쿠엔틴 또한 자신을 성공으로 이끈 그 노래들을 더 부르기를 단호히 거부한다. 샘 역시 큰 실수를 저질렀음을 사과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샘은 자신이 아들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 또한 끝내 버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버지이기 때문에. 아들이 저지른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와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상실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샘은 이제야 겨우 아들이 완성하지 못했던 곡의 가사를 채워넣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노래한다. "네 노랠 부를 길을 찾을 테니 같이 불러다오. 내 아들아"라고 말이다.
현실이라면 샘의 선택은 아마 지지보다 비난을 받을 것이다. 아무리 양보해도 그의 노래에 환호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안타까움에 먹먹해지는 그의 마지막 노래를 들으며 그 마음을 조금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뿐일 테다. 9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