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원貨강세 기술력으로 극복을

정영식 <삼성경제硏 수석연구원>

2004년은 원화 강세가 두드러진 한해였다. 올 한해 원화는 달러화 대비 약 13% 절상됐다. 이에 반해 경쟁통화인 엔화와 대만달러화는 같은 기간 각각 2.7%, 5% 절상에 그쳤다. 또 다른 특징은 원ㆍ달러 환율이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귀했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원화의 대폭적인 강세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수출이나 무역수지 흑자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점에 있다. 우리나라의 2대 수출시장인 중국과 미국의 경제성장세가 원화 강세의 위력을 눌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오는 2005년이다. 우리나라의 수출 호조세를 야기했던 요인들이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 중국과 미국경제에 대한 대부분의 전망이 2004년보다 좋지 않다. 여기에다 원화의 추가적인 강세가 예상되고 있다. 현 수준보다 낮은 원ㆍ달러 환율은 과거의 하락세와는 그 영향에서 차원이 다르다. 추가적인 원화 강세는 수출기업들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돼 수출물량 축소, 일부 중소수출기업의 도산사태까지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초우량기업을 제외하면 수출기업의 해외영업수지 손익분기점 환율은 1,050원 내외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중소수출업체들의 상황은 더욱 비관적이다. 이미 손실이 발생하고 있어 추가적인 원화 강세는 수출 중단으로까지 이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2005년 수출환경의 악화가 예상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국내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 수출의 위축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도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먼저 정부에 한ㆍ중ㆍ일 환율 공조체제, 미시적 외환정책 추진을 주문하고 싶다. 중국의 환율제도 개선이 지연됨으로 인해 그 피해는 한국 등 주변국이 떠안고 있는 실정이다. 한ㆍ중ㆍ일 각국의 이해관계가 달라 공조 자체가 쉽지는 않지만 공조체제 구축을 통해 심리적인 안정효과와 나아가 행동으로 나서지 못하는 중국 지도부에 명분을 줘 환율제도 개선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필요한 대응이라고 본다. 다음으로 원화 강세를 막기 위한 과도한 외환시장 개입보다는 수출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기술개발 및 금융지원, 수출관련 인프라 개선 등 미시정책에 더욱 초점을 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한편 원고가 장기화할 경우를 대비해 내수경기 안정책을 미리 마련해야 할 것이다. 엔고 초기에 일본 중소수출업체의 도산이 크게 늘어 문제가 됐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원고의 파고가 수출기업에 밀려들고 있다. 단기적으로 끝날 것 같지 않아 수출기업은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 수출기업이 원고를 한차원 도약하는 계기로 삼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러한 역발상을 지난 80년대 중반 이후 엔고시기 일본의 대응에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엔고 당시 일본기업들은 대략 다섯 가지 방향으로 대응했다. 첫째, 환 리스크 관리의 강화이다. 이전에 환 리스크 관리에 큰 관심이 없던 기업들이 환 위험의 중요성을 깨달아 적극적인 환 위험 관리로 돌아섰다. 둘째, 저수익사업의 철수와 경영합리화 등 원가절감 노력이다. TQC(Total Quality Control)ㆍJIT(Just-In-Time)ㆍCAD&CAM 등 다양한 경영합리화 기법이 빛을 발한 시기가 바로 일본의 엔고 시기이다. 셋째, 고부가가치화 등 사업구조 고도화이다. 고부가가치화가 있었기 때문에 엔고를 수출가격 전가로 대응하는 것이 가능했다. 넷째, 생산비 절감을 위한 생산기지의 이전이다. 전체 제조업 해외직접투자에서 아시아 지역의 비중이 85년 11.7%에서 95년 24.3%로 상승했다. 특히 중국으로의 진출 비중이 높아졌는데 이는 엔고기간 동안 원가절감을 위한 해외진출이 얼마나 활발했는가 보여주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내수시장 공략의 강화다. 우리나라는 2005년에도 내수부진이 예상돼 일본 엔고 초기 상황보다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내수시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수출환경 악화를 일부 만회할 수 있는 내수시장을 창출하거나 공략해야 할 것이다. 원고시대, 정확히 말하면 달러화 약세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러한 시대 변화에 빨리 대응하고 적응해나가야 할 것이다. 85년 2월 달러당 260엔에서 95년 4월 80엔선까지 하락하는 초엔고 상황에도 일본기업들은 생존했다. 아니 세계 최고의 기술경쟁력으로 다시 태어나 세계경제를 주도하고 있다. 우리도 그 비결을 배워 원고라는 파고를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로 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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