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건강한 엔젤이 벤처(창업) 꽃 피운다


7년 전 유럽연합(EU)에서 '왜 유럽에서는 빌 게이츠가 나오지 않는가'라는 연구보고서가 나온 적이 있다. 결론은 유럽 사람들은 도전적이고 위험부담이 큰 창업을 회피하는데 그 원인은 실패에 대한 관용이 부족한 사회문화와 제도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질문이 제기됐으며 전문가들은 가장 중요한 정책 대안으로 '실패하더라도 재도전이 가능한 제도적 환경 조성'을 제시했다. 과감하게 도전하고 실패하더라도 재기할 기회가 있다면 꿈과 재능을 가진 젊은이들이 취업이라는 좁은 문 외에도 새로운 기회를 향해 더 적극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실패에 대한 관용이 높은 사회, 재도전이 가능한 제도적 환경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 해결책 중 하나가 엔젤(angelㆍ기술과 아이디어는 있지만 자본이나 경영 수완이 부족한 벤처기업 창업자에게 경영 노하우와 지분투자 형태의 자금을 지원하는 개인투자자) 투자 활성화다. 창업은 불확실성과 위험이 매우 높은 의사결정 영역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활기반을 담보로 창업자금을 마련하거나 융자ㆍ보증에 의존하면 사업 실패시 신용불량 위험에 처하거나 인생 실패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우수한 전문인력들이 창업을 기피하는 주요 이유이다.

전문성 갖춘 자본 참여 필요


청년 창업자들은 의욕과 열정이 넘치지만 경험과 자본 부족으로 실패 확률이 높다. 그런데 엔젤은 전문성과 경력을 활용해 사업 초기 위험을 줄여주고 자신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거래선 확보 등 사업활동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우리나라의 창업생태계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전문화된 엔젤 그룹의 부재다. 10여년 전 벤처 붐 당시 '엔젤'들이 급증해 한때 2만여명을 넘기도 했지만 벤처 열풍이 꺼지면서 급속히 쇠퇴,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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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젤 투자는 창업 초기 단계에 투자하므로 위험부담이 크고 투자금 회수에 장기간이 소요된다. 또 가능성 있는 기업인들에게 투자하고 지원해 성공 기업으로 이끌고자 하는 멘토링ㆍ코칭 기능이 수반돼야 한다. 따라서 인내심이 강한 자본(patient capital), 기술ㆍ경영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자본(smart capital)의 시장 참여가 필요하다. 그러나 1990년대 말 나타난 엔젤들은 대부분 이러한 요소가 결여돼 있었다. 오히려 산업ㆍ기업 특성에 대한 이해 없이 무작정 투자해놓고 단기간에 투자회수 압박을 가해 창업자를 힘들게 하는 '묻지마 엔젤', 사업성과가 부진할 경우 불법적인 투자 회수를 요구하는 '블랙 엔젤'들이 많았다.

최근 성공한 1세대 벤처기업인들이 중심이 돼 엔젤 투자가 다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정부에서도 엔젤펀드를 조성하고 지원센터를 구축해 투자를 촉진하고 있다. 대기업이 주도한 가장 큰 규모의 엔젤펀드인 아산나눔재단의 '정주영 엔젤투자펀드'도 출범했다. 이러한 다양한 움직임들이 한국의 엔젤 투자 활성화와 창업생태계 선진화에 크게 기여할 것을 기대한다. 엔젤 투자를 활성화하려면 큰 위험부담을 떠안는 데 대한 인센티브 차원에서 양도차익에 대한 세금감면 요건 완화(의무보유기간 단축), 소득공제한도ㆍ비율 확대 등 정책적 보완도 필요하다.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건전한 투자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엔젤 등록ㆍ평가제도를 보완하고, 지역 단위로 '비즈니스 엔젤 네트워크'를 구축해 투자자와 창업인 간에 탐색비용도 줄여줘야 한다.

성공한 벤처기업인 등 적극 나서야

사업 경험이 풍부하고 자금에 여유가 있는 성공한 벤처기업인이나 투자 전문가들이 '선도 엔젤(lead angel)'로 적극 나설 때 바람직한 엔젤 투자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 엔젤 투자는 투자수익이라는 경제적 동기만이 아닌, 기업가정신을 활성화하고 창업생태계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사회적 동기가 병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엔젤은 창업자들이 기업인으로서 바람직한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게 인생 선배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새롭게 활성화되고 있는 엔젤 투자가 역동적인 창업생태계 구축에 기여하는 건강한 자본의 역할을 수행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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