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발언대/5월 26일] 파산선고 엄격 심사로 도덕적 해이 막아야

국가부도에 버금가는 ‘외환위기’와 ‘신용카드 대란’이 이어지면서 은행을 이용하지 못하는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가 700만명을 넘어섰다. 신불자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정치적 해결 방안이 쏟아져 나왔다. 그 과정에서 ‘금융채무불이행자’는 ‘생계형 신용불량자 또는 사회적 약자’로 등식화됐다. 정치권과 정부가 사회적 약자, 패자인 신불자의 부활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과 신용회복 지원정책 등을 내놓으면서 금융시장의 기본, 나아가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도덕적 해이의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났다. 우선 개인파산 신청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2000년 329건에 불과했던 건수가 2005년 3만8,773건으로 5년 동안 100배 늘었다. 2006년에는 12만3,691건으로 세 배 증가했다. 지난해는 15만4,039건으로 2000년에 비해 468배나 많아졌다. 돈이 있어도 빚을 갚지 않기 위해 파산을 신청하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숨긴 재산 등이 적발돼 면책이 기각된 건수는 2006년 54건(0.08%)에서 지난해 1,424건(1.18%)으로 26배나 늘었다. 반면 빚의 일부를 갚아야 하는 개인회생은 신청건수가 2005년 4만8,541건에서 2006년 5만6,155건으로 소폭 늘었다가 지난해 5만1,416건으로 감소했다. 개인파산이 급증한 것과 대조적이다. 울산지법은 개인파산을 남용하는 사례가 늘자 지난해 4.2%였던 기각률을 올해 22.2%로 대폭 높였다. 강원ㆍ제주 등 전국에 폭주하는 개인파산은 도덕적 불감증이 만연한 것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낸다. 개인파산 제도는 과도한 채무로 절망에 빠져 삶의 의욕을 잃은 채무자를 구제하고 새 출발을 도울 수 있는 최후의 구제책임에는 틀림없다. 개인파산이 받아들여져 법원의 면책허가가 나면 신분상의 법적인 제한이 모두 소멸될 뿐 아니라 잔존 채무도 사라져 큰 불이익 없이 한번에 빚을 청산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파산 제도는 채권자의 권리를 국가가 강제로 소멸하는 행위다. 또 채무자들을 도덕적 해이에 빠뜨리기 쉽다. 선량한 피해자를 막고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파산선고 심사의 엄격함과 신중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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