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농협 차기 회장의 조건

"농협 회장이 센지 내가 센지 모르겠다." 지난 2003년 2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당선 직후 강원도의 한 토론회에서 내뱉은 푸념이다. 이런 사정은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바뀐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주무부처인 농림수산식품부 내에서는 '장관 위에 농협 회장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다. 이 대통령과 막역한 사이인데다 300만 농민을 등에 업은 현 회장의 힘을 빗댄 말이다. 농협의 규모만 봐도 농협 회장의 권력을 실감할 수 있다. 총 자산은 230조원에 이르며 은행ㆍ보험ㆍ증권 등 금융회사에서부터 작게는 여행사까지 수많은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웬만한 대기업 못지않다. 전국 곳곳에 산재한 1,170여곳의 지역조합도 농협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 사업 전담 대표이사와 중앙회 전무이사 등 주요 임원에 대한 인사권이 회장에서 인사추천위원회로 넘어갔지만 사실상 회장의 입김이 결정적이라는 점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런 거대 조직을 이끄는 농협 회장이지만 권한에 비해 책임은 미미하다. 불리한 사건이 터지면 '비상근 명예직'이라는 방패 뒤에 숨는다. 올해 전산 사고 당시 주요 임원이 징계를 받았지만 농협 회장은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은 것이 대표적이다. 반면 농협 구조개편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는 이유로 지난달 농협 50주년 행사에서는 금탑산업훈장까지 받았다. 농협 회장에게 '과'는 없고 '공'만 있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이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농협 회장을 새로 선출하는 선거가 불과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오는 7일부터 11일까지 후보 등록을 받고 18일 대의원 투표를 통해 신임 회장을 선출한다. 농협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선거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원병 회장의 연임 시도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가 하면, 허수아비 후보 의혹도 나오고 있다. 어떤 후보를 회장으로 선출할지는 농민의 표심을 대변하는 농협 대의원들이 결정할 문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올해 50세를 맞은 농협이 또 다른 50년을 준비할 중대 기로에 서 있다는 점이다. 당장 내년 초 사업구조 개편을 마무리해야 하는데다, 미국을 포함한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대비해 농업의 경쟁력을 살릴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아무쪼록 차기 회장은 공을 아랫사람에게 돌리고 과는 자신이 짊어지는 현명한 사람이 선출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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