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 역대 美대선 드라마
케네디·해리슨·부시등 이변 연속
“마지막 투표함이 개봉될 때까지 누구도 승자를 알 수 없다”
여론조사와 각종 선거예측 기법이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미국이지만 선거결과가 막판까지 오리무중에 빠진 일은 여러 차례 있었다. 심지어 지난 48년의 경우 일부 일간지들이 출구조사 결과만 가지고 낙선자를 당선했다고 제목을 뽑아 보도하는 `세기적 오보'를 한 일도 있을 정도다.
지금도 미국인들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최대의 접전은 지난 60년에 맞붙었던 민주당의 존 F. 케네디 후보와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간 대결. 당시 선거 중반까지만 해도 부통령까지 지낸 경력이나 연륜 등에서 닉슨에 비할 바가 못 됐던 케네디의 승리를 점치는 전문가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43세의 젊음을 앞세운 케네디는 베트남전의 개막과 흑인인권 운동의 활성화 등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던 미국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능력을 갖췄다는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심는데 성공했다. 선거종반에 무서운 인기몰이를 하며 노회한 보수 정객의 이미지를 벗지 못한 닉슨을 누를 수 있었다.
그 해 선거에 처음 도입된 생방송 TV토론이 케네디의 승리에 도움을 준 것은 확실하지만 선거 마지막 날까지 양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오차한계 내에 머무르며 선거운동원들의 가슴을 졸이게 만들었다.
직접선거와 간접선거를 혼합한 독특한 미국의 선거제도 때문에 선거운동에선 이기고 막상 선거에선 진 일도 2번이나 있었다. 이미 100년도 훨씬 전이긴 하지만 1876년과 1888년 선거에선 전국 득표율이 앞선 후보가 선거인단 확보수에서 뒤져 패배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1888년 선거 당시 공화당의 벤자민 해리슨 후보는 민주당의 그로버 클리블랜드 후보보다 9만여표를 적게 얻었지만 선거인단을 65명이나 더 확보, 제 23대 미 대통령으로 백악관에 입성했다.
플로리다, 미시건 등 중대형 주들에서 치열한 경합이 벌이지고 있는 올해 일부 전문가들은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가 112년만에 또다시 `제도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서부지역에 비해 마감시간이 3시간이나 빠른 동부지역의 일부 신문들이 여론조사 결과만 믿고 낙선자인 공화당의 토머스 듀이를 당선자로 보도한 1948년도 박빙의 접전이었다.
당시 여론 및 출구조사는 일제히 민주당의 해리 트루먼이 선거에서 패배할 것이라고 나왔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던 것.
한때 지지율이 90%가 넘었던 현직 대통령이 연임에 실패한 사례도 있다. 지난 1992년 선거에서 빌 클린턴에게 무릎을 꿇은 조지 부시는 선거가 시작될 당시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이 90%를 넘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워싱턴 정가에 잘 알려지지조차 않은 변방의 아칸소 주지사에 불과했던 클린턴의 약력에 비추어 싱거운 승부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클린턴은 선거운동 기간내내 걸프전 승리에 따른 높은 국민지지를 믿고 안이하게 대처한 부시의 경제정책 실패를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지며 선거 중반 뒤집기에 성공했다. 당시 클린턴의 슬로건은 “멍청아, 문제는 경제라구(It's economy, stupid)”였다.
입력시간 2000/11/05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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