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원 국무총리가 17일 급작스레 국회를 찾았다. 오는 24~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 전에 원자력 방호 및 방사능 방재 대책법 개정안을 처리해달라는 요청을 강창희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법이 통과하지 못하면 우리나라가 지난 2012년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한 약속을 저버리게 돼 국제적으로 체면이 서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었다. 황우여 대표 등 새누리당 지도부도 야당을 향해 이번주에라도 '원포인트 국회'를 소집해 법안을 통과시키자고 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원자력방호법을 두고 정부와 국회가 벌이는 호들갑은 이미 국제적 망신거리다. 대통령의 출국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국가의 두 중추가 법 처리를 위해 우왕좌왕한다는 것이 한마디로 기본이 안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원자력방호법이 발의된 지 1년 반이 지나도록 정부는 무엇을 했나. 국회법상 3월에는 통상 임시국회가 열리지 않으니 정상적인 일정대로라면 최소 2월까지 법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그동안 법안의 중요성과 처리시한을 국회에 전혀 설명하지 않은 채 뒷짐만 지고 있었다.
국회의 직무유기도 지탄 받아야 한다. 원자력방호법의 심의·의결권을 가진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9월 이후 6개월 넘게 단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않았다. 방송을 둘러싼 여야 간 극심한 정쟁으로 상임위원회는 사실상 마비됐다. 올해 2월 임시국회에서도 여야는 원자력방호법을 비롯한 112개 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지만 종합편성채널에도 편성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송법 개정안에 대한 이견으로 또다시 파행의 길을 걸었다.
일단 여야가 이날 3월 국회를 열기 위한 협상에 들어갔으니 수일 내로 사태는 일단락될 것이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정부와 국회가 이번 일을 계기로 안일함을 버리지 않는다면 유사한 사태는 언제고 다시 반복될 것이다. 국격을 논하며 서로 책임을 미루기 전에 스스로 기본부터 지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