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무대서 열렬한 찬사/뮤지컬「명성황후」 뒷바라지/“난관뚫고 뉴욕공연후 울음/거래처 등 접대땐 티켓으로/기업 문화지원 더 늘릴 필요”지난 8월 뉴욕에선 두 개의 극적인 드라마가 펼쳐졌다. 하나는 국내 최초로 브로드웨이 무대에 진출한 뮤지컬 「명성황후」. 명성황후의 인간적인 고뇌를 장대한 스케일과 뛰어난 연출로 담아내 미국 언론의 호평과 2만5천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더 극적인 드라마는 무대 바깥에 있었다. 막대한 물량공세를 펼친 일본도 실패한 그곳에서 신화를 만들어낸 극단 「에이콤」(대표 윤호진)의 배우와 스태프들. 그들의 성공담은 실로 뮤지컬보다 드라마틱한 것이었다.
그 중심에는 「에이콤」의 운영위원인 김영환 한영건설회장(50)이 있었다. 브로드웨이에서의 성공적인 무대를 기념하여 국내에서 12일까지(하오 3시·7시30분, 월요일 쉼) 계속하는 앙코르 공연 실무 지휘에 바쁜 김회장을 예술의 전당에서 만났다.(02)4467770
『서구 열강은 몰려오는데 우리는 사색당파로 나눠져 싸우는 게 1백년전이나 지금이나 상황이 똑같은 것 같아요. 명성황후 뉴욕 공연이야말로 모든 난관을 뚫고 이뤄낸 하나의 사건이지요. 요즘같은 경제위기에 온국민이 한마음이 된다면 다시 우뚝 설 수 있다는 하나의 본보기라 생각합니다.』
김회장은 아직도 감격이 가시지 않는 듯 했다. 링컨 센터와 대관 계약을 맺은 것은 지난 4월. 그러나 한보 사태로 재벌 총수들이 줄줄이 소환되는 판에 협찬사 구하긴 하늘의 별따기였다. 김회장은 회사 임원들의 아파트와 자신의 부동산을 담보로 은행에서 5억원을 조달했다. 뉴욕서도 마찬가지였다. 8월 한달 내내 머물면서 호텔 마련과 오케스트라 섭외 등 온갖 잔일과 자금 조달을 도맡았다.
『14일 드레스 리어설도 제대로 못한 상태로 첫 공연에 들어 갔어요.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배우와 스태프들이 아무 실수없이 잘 하더라구요. 감격에 벅차서 함께 온 처와 딸과 얼싸안고 울었어요.』
뉴욕타임스 기자가 다녀간 다음날, 초조하게 신문을 기다리던 일도 잊지 못할 기억이다. 저녁 12시쯤 인터넷에 기사가 떴다고 전화가 왔길래 새벽 1시에 신문사까지 가서 신문을 사왔다. 극찬 일색인 기사를 보고서야 『우린 살았구나. 목표 이상 해냈으니 떳떳하게 돌아가겠구나』하고 안도했다고 한다.
『처음엔 사람들이 「미친 사람」이라 하더군요. 그러나 해외에 우리의 문화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춤과 가락에 재주가 있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윤대표의 열정과 연출 능력을 믿었고요. 이젠 장한 일 했다고 모두들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표를 사주기도 하고요.』
경기고와 서울대 공대 동문들이 중심을 이룬 「에이콤」 운영위원회에 김회장이 합류한 것은 95년 초. 93년부터 1년 선배인 이상렬 대농부회장이 「뮤지컬 시장이 커질테니 돈도 벌고 문화사업도 해보자」고 권유했지만 「어려울때나 불러달라」고 사양했다. 그러다 에이콤이 연이은 자금난으로 고생하자 약속을 지켰다.
『저는 거래처 접대때 보통 부부가 함께 관람토록 공연티켓을 줍니다. 다들 갔다 와서 좋아해요.』
김회장은 우리 기업도 접대 문화를 건전하게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화도 발전시키고 좋은 가정도 만들 수 있어 일석이조란 얘기다.
『미국에서도 유수한 기업일수록 문화지원에 열심이지요. 철강왕 카네기가 나쁜 짓도 많이 했지만 이미지가 좋은 게 그 덕분 아닙니까. 기업 매출에 도움도 되고요. 우리도 대기업일수록 문화지원을 늘려야 합니다.』<최형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