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유리창을 깨자/김영종 동아증권 사장(로터리)

명태(명예퇴직)니 조기(조기퇴직)니 하는 말들이 최근 유행병처럼 번졌다.우리와 경쟁하는 구미에서는 오래전부터 시행된 기업의 인사관리제도중 하나였으나 경직된 인사제도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불경기에 따른 여파와 더불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것 같다.우리나라는 엄연히 자본주의 경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고 자본주의 경제는 당연히 시장경제 논리에 의한 경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대부분 기업의 내부 인사관리 관행을 보면 형평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인지 모르나 사회주의식으로 기업이 경영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우려를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인사가 만사라는 것은 누구나 다 인정하면서도 고도 성장기의 유물처럼 많은 기업에서는 인사관리에 관한 한 경쟁을 제한하는 제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인사관리나 조직관리의 주요수단인 승진, 급여, 보직제도만 하더라도 대부분 개인의 능력이나 열의, 잠재능력, 전문성 등은 무시된 채 과거의 제도가 그대로 답습되는 예를 많이 보게 된다. 노조가 협상한 급여인상률이 일 잘하는 사람도 10%, 못하는 사람도 10%씩 모두 차별없이 적용되고, 호봉제도라는 군대식 제도가 기업에 그대로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어 밥 그릇수만 채우면 1호봉씩 자동승진의 영예를 안게 된다. 그러니 「나이가 벼슬이다」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게다가 순환보직제가 있어 한 보직에 2∼3년 근무하면 회사가 알아서 다음 자리를 찾아 옮겨주니 일 좀 알만하고 거래선이나 정보구득처와 얼굴 좀 익혀놓으면 또 다른 자리로 옮겨가게 된다. 그래서 직장생활 10년이상 해본 소위 요령을 아는 대다수의 월급쟁이들은 업무의 전문성도 기대하기 힘들고 특별히 열심히 머리 써가면서 일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사고가 알게 모르게 몸에 배는 것 같다. 이러한 인사관행이 십수년간 정착하다보니 일부 월급쟁이 사이에 「유리창 닦는 사람이 유리창 깬다」는 말이 별 부끄럼없이 회자되는가 보다. 소위 총대메고 나서지 않아도 월급 올라가고, 승진도 하고, 보직도 바꿔주니 유리창 더러워졌다고 내가 특별히 나서서 닦을 이유가 딱히 없어진다. 그래서 가만 있으면 중간이요, 좋은게 좋은 그런 풍토가 바이러스처럼 퍼지고 있다. 이래가지고서는 개혁은 커녕 작은 변화도 어렵다. 유리창을 깨는 실수를 하더라도 뿌연 유리창을 닦는 용기있는 사람이 인정받을 때 개혁도 되고 우리경제의 구조적 변화도 빨리 달성된다. 우리 모두 유리창을 깨자는 운동이라도 벌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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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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