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해운업계의 큰 별이 졌다.’
26일 타계한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은 국내 해운업계가 글로벌 무대의 중심부로 진출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고인은 폭 넓은 대인관계와 탁월한 국제 감각에서 국제 해운업계의 굵직한 자리를 도맡으며 한국을 국제 해운강국으로 끌어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지난 1991년 한국이 처음으로 국제해사기구(IMO) 가입을 추진할 당시 외무부, 해양항만청 등에서는 IMO 가입을 위해 발벗고 나서줄 인물로 조 회장을 지목했다. 매년 절반 이상을 해외현장에서 보내온 조 회장은 두터운 인맥을 바탕으로 각국 대표들을 찾아 협력을 요청했고 160여개국의 투표로 치러지는 이사국 선임을 이뤄냈다. 그는 94년 우리 나라가 IMO 이사국으로 연임될 때도 큰 몫을 해냈다.
고인은 93년 한국인 최초로 세계 최대의 민간해사기구인 발틱국제해사기구협의회(BIMCO) 이사에 선임됐으며 99년에는 부회장에 올랐다. 2000년부터 건강이 악화되기 전인 2005년까지 세계선사협의회(WSCㆍWorld Shipping Council) 이사회 이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고인은 2004년에는 독일 함부르크 주정부가 수여하는 최고 공로 훈장 ‘오너러리 메달 오브 골드(The Honorary Medal of Gold)’를 수상했다. 이 상은 1853년 제정된 이래 151년 동안 총 35명만이 수상한 권위 있는 훈장으로 고인의 경영 능력과 인품에 대한 세계인의 평가를 가늠케 해준다.
기업경영에서도 한진해운을 업계 1위 선사로 키워내는 뛰어난 수완을 발휘했다. 한진해운은 92년 한국 최초의 4,000TEU급 컨테이너선을, 1996년에는 5,300TEU급 세계 최대형 초고속 컨테이너 선박을 취항시켰으며 지난해에는 미주 노선에 국내 최초의 8,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투입하는 기록을 남겼다.
특히 국내 기업들의 대 중국 투자가 초기 단계이던 93년 중국지역본부를 신설하고 상하이, 톈진, 다롄, 칭다오 등 주요 거점에 내륙 컨테이너 장치장을 설치했다. 남보다 한 발 앞선 중국투자는 지난해 한진해운 컨테이너 부문 전체 매출액 가운데 중국지역이 30%를 차지할 정도의 성과로 이어졌다.
고인은 94년 한국해양소년단연맹 총재, 97년부터 2000년까지 한국선주협회장 등을 역임하며 해양입국의 초석을 다지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한국선주협회 관계자는 “조 회장은 한진해운뿐 아니라 국내 해운업계 나아가 세계 해운업계를 이끈 리더였다”며 “그가 꿈꾸고 일군 비전이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 실현될 것을 의심치 않는다”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