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지금은 EQ시대

‘사관과 신사’라는 영화가 있다. 밑바닥 생활을 면하기 위해 해군항공사관학교에 지원한 청년 잭이 혹독한 특별 훈련을 이겨내고 장교가 돼 ‘진정한 신사’로 다시 태어난다는 줄거리다. 이제 와 새삼 20년 전 영화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필자도 대학 졸업 후 학사장교로 해군에 입대, 강도는 약했지만 잭과 비슷한 군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군가를 이해해야 하거나 이해를 구해야 할 상황이 생기면 가끔 그 영화와 필자가 받은 훈련이 오버랩될 때가 있다. 해군장교가 되려 한 데 거창한 포부 같은 것은 없었다. 일단 편하게 군 의무를 마치고 싶었고 제복의 매력도 선택에 일조를 했다. 다분히 헐렁한 마음가짐으로 입대를 했다. 그러나 그 후부터는 내내 ‘빡셌다’. 매일 구보ㆍ선착순ㆍ빳다(매)의 반복이었다. 매 맞기 싫어서 장교로 군에 갔는데 빳다는 다반사였다. 임관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독심을 품고 견뎌냈다. 내무반 훈련 동기 중에는 신부도 있었고 목사ㆍ스님도 있었다. 일류대 수재도 있고 하사관 출신도 있었다. 다양한 이력에 천양지차의 생활을 하다 한데 모여 인내의 극한을 매일 시험받았다. 그때 인간이 진정으로 서로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얼마만큼 의사소통이 가능할까 고민하며 인간의 참마음과 소통의 한계를 많이 생각했다. 요즘 지능지수(IQ)보다 감성지수(EQ)가 새롭게 인정받고 있다.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할 때는 마음과 감성으로 이해해야지, 머리로 납득한다고 이해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Q를 연구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EQ란 ‘자신과 타인의 감정에 대한 이해력과 공감, 그리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방향으로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으로 정의된다. 그리고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사회적 성공을 좌우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기실 그동안 감성은 논리와 사고력의 빈곤, 지성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푸대접을 받았다. 그런데 여태껏 비과학적이라고 간주됐던 그 감성이라는 것이 어떤 논리나 지성보다 확실할 수 있으며 IQ보다 EQ가 높은 사람이 성공은 물론 행복까지 얻을 수 있다고 하니 부지런히 EQ부터 높일 일이다. 자신을 민원인으로 설정해보자. 급한 일로 비오는 날 어떤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업무 담당자가 휴지를 건네주며 “비 맞으셨네요. 닦으세요.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한다면. 상대방의 처지를 살펴보는 것, 그것이 EQ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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