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유교수 연구세계

'콜럼버스 달걀' 발상바탕 실패 두려워 않는 실험가비커와 플라스크, 알코올 램프. 초등학교 시절, 약품냄새로 매캐한 과학실험실을 연상하면 떠오르는 것 들이다. 그 기억 가운데 황산이라는 아주 위험(?)한 물질이 있다. 자칫 잘 못하면 화상을 입는다며 선생님께서 여러 번 주의시키셨던. "왜 황산이 떨어지면 화상을 입죠?" 호기심이 가득한 친구가 물으면 "물기를 빼앗아가기 때문에 타는 거야"라고 알 듯 말 듯한 선생님의 설명. 황산을 종이나 옷에 떨구면 그 자리가 까맣게 변한다. 때문에'황산=태운다'는 것을 공식처럼 머리 속에 넣고 있는 이가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생각은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공식 속에 갇혀버린다. 유룡 교수는 누구나 알고 있는 평범한 사실에 의문을 가졌다. 질산과 염산은 황산과 같이 똑 같은 산인데 황산보다 잘 태우지 못한다. '왜 일까. 황산 질산, 염산은 모두 물기를 뺏는 성질을 갖고 있다. 그런데 황산은 탈수가 잘 일어나도록 하는 '촉매' 역할도 한다. 두 가지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어 탈수 현상이 잘 일어난다.' 유 교수는 이 같은 결론을 얻었다. 탄소나노막대기를 만드는 가장 이상적인 촉매로 황산을 생각해 낸 것이다. 유 교수는 그가 가졌던 생각을 '콜럼버스 달걀'과 같다고 말한다. 막상 해놓고 보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 여기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학자로서의 실험정신이 세계적인 성과로 이어졌다. "물질이 왜 색깔을 갖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양자역학이 발전한 것과 같죠." 유 교수는 그 스스로 10여 년간 '무명의 설움'을 겪었다고 말한다. 미국 유학 뒤 한국에 돌아왔지만 그의 연구에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매일매일 이어지는 강의와 빠듯한 연구비, 2~3년마다 떠나 보내야만 하는 제자들. 가족들도 매일 밤늦게 들어오는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이처럼 열악한 상황에 아랑곳 하지 않고 좋은 연구성과를 내라며 채근하는 과학계의 분위기는 그를 힘들게 했다. 95년 세계적인 학술지인 '네이처'에 논문을 보냈지만 심사도 받지 못하고 거절당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서두르거나 주저앉지 않았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며 그는 연구에 더욱 빠져들었다. 유 교수는 지금 연구하고 있는 무기물질 합성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게 아니다. 다른 사람이 만든 물질을 이용해, 백금 촉매를 제조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그에게 생소했던 물질합성에 뛰어든 것은 큰 모험이었다. 그는 앞으로 단백질 등 고분자 유기물을 이용하는 데 뛰어들 계획이다. 유 교수는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으로 네이처에 논문을 게재하고 상복까지 터져, 유명세를 타고 있다. 몇 년치 연구비도 두둑하게 받기로 돼있다. 그렇지만 그는 "달라진 건 없다"고 말한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자신과 같은 연구를 하고 있어 조금이라도 방심할 틈이 없다는 그의 말을 들으면 수긍이 간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70이 넘는 나이든 과학자들이 새로운 연구에 뛰어들고 논문을 내는 것을 많이 본다"는 그는 "과학에는 격식을 따지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앞으로도 그가 '생각의 자유'를 갖고 새로운 연구에 도전할 것이라는 것임을 짐작하게 해주는 말이다. 문병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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