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들이 판친다…"불황은 人災"
■ 무너진 국정운영 시스템경제관료들 잘못된 국책사업 방치한채 무기력수장들 중심 못잡아 정책수행 능력도 떨어져일부선 "과다한 낙관론…경제분석 라인 이상"
김영기 기자 young@sed.co.kr
이헌재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취임 당시 "아마추어들의 시행착오를 받아들일 만큼 우리 경제가 한가하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재임 내내 정치권의 경험 없는 아마추어들에게 둘러싸여 꿈을 펼치지 못했고 샌드위치 신세가 된 경제관료들은 보신주의에 빠지고 말았다.
이 전 부총리에 이어 경제 사령탑을 물려받은 한덕수 부총리. 그는 취임 이후 기회만 있으면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재경부 관료들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이에 고무된 탓일까. 경제관료들은 연신 낙관론을 읊어대기에 바빴고 이를 믿은 부총리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완벽한 정책조합(policy mix) 봤습니까"라며 정책홍보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더욱 차가워졌다. 관료들의 무기력증도 심해지기만 했다. 심지어 관료들이 그들이 비판하던 '아마추어리즘의 덫'에 걸려들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재경부의 한 간부는 "위쪽(청와대) 눈치보기가 갈수록 심해지는 양상"이라고 토로했다. 과천 관가의 공무원들은 대통령 자문위원회를 곧잘 '얼굴 없는 상관'에 비유한다. 최근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행담도 문제가 단적인 사례다. 냉철한 경제적 분석 없이 정치적 논리에 의해 만들어진 대형 국책사업에 대해 경제관료들이 감히 제동을 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한 민간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참여정부 출범 이후 이어져온 정부 자문 위원회와 정통 관료들간의 비논리적 관계가 곪아 터진 것"이라고 질타했다. 경험 있는 경제관료들은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입을 다물고 무경험자들이 핸들을 잡다가 사고를 낸 형국이다.
그렇다면 관료들은 과연 '아마추어리즘의 덫'에서 벗어났는가.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법원 설립을 놓고 재경부와 복지부가 티격태격하더니 이번에는 담뱃값 인상을 놓고 또다시 붙었다. 부동산 관련 세제를 놓고 재경부는 걸핏하면 당에 두들겨 맞더니 거래세 인하 등 정작 필요한 정책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한 태도로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관료들이 이처럼 아마추어리즘의 덫에 걸려들어간 것은 물론 스스로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무엇보다 경제수장들의 행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 부총리는 성남공항 이전 문제로 혼쭐이 난 지 얼마되지 않아 "자산 버블에 대응하기 위해 통화정책적 대응에 고심하고 있다"고 언급, 채권시장의 투매를 부추겼다. 박승 한국은행 총재의 연이은 실수는 시장에서조차 관심을 두지 않을 정도가 됐다.
경제수장들이 중심을 잡지 못하다 보니 간부들의 정책수행능력도 현저히 떨어졌다. 우선 '민(民)'과 '관(管)'이 따로 노는 정책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S그룹의 한 임원은 "경제관료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시장의 우위에 있는 것으로 아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은 수도권 지역 내 대기업 공장 신증설 허용 문제 등 민간기업의 투자를 가로막는 현상으로 직결되고 있다. 민간 부문은 막아 놓고 재정확대와 연기금ㆍ공기업 등 공공투자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비합리적인 정책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세제정책은 이미 한계상황을 넘어섰다는 분석이다. 종합부동산세 제도 도입에서부터 양도소득세 전면 과세 파동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잡음 없이 이뤄진 것이 없다. 재경부의 정책수행능력은 사라지고 세제정책 대부분이 청와대의 안테나에 조정되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문제는 경제분석 시스템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수석 경제부처인 재경부의 경제분석 라인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 의미 없는 낙관론으로 더블딥을 초래한 데 이어 올해 또다시 과다한 낙관론에 근거, 정책집행의 추진력과 타이밍을 놓쳤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민간연구소장은 "경제부처에 총체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문했다.
입력시간 : 2005/05/31 18: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