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1월 24일] 귀향 버스의 추억

지금은 사라진지 오래지만 예전에는 주요 공단마다 근로자들이 선물꾸러미를 들고 귀향버스에 오르는 게 아주 낯익은 명절 풍속도였다. 회사 동료나 가족들과 함께 회사에서 마련해준 버스를 타고 고향에 찾아가면 주위로부터 온갖 부러움을 사기도 했을 정도다. 기업들이 과거 귀향버스를 운영했던 또 다른 이유는 명절만 끝나면 이런저런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는 근로자들을 한 명이라도 더 붙잡아두기 위한 의도도 깔려 있었다. 직원들이 고향에 내려가 주위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듣다 보면 처우가 조금이라도 좋은 곳으로 빠져나가는 바람에 명절만 끝나면 공장 가동에 골머리를 앓은 적도 많았기 때문이다. 사상 최악의 불황과 함께 다가온 올해 설을 맞는 근로자들은 옛날의 귀향버스라도 되돌렸으면 하는 생각이 굴뚝같을 듯하다. 산업현장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설날 연휴를 일주일에서 한 달까지 늘려 쉬는 중소기업이 수두룩하며 회사에서 설날 이후 복귀일자조차 듣지 못한 채 무작정 고향길에 오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인천 남동공단의 자동차협력사에 10년째 근무해온 김모 차장은 며칠 전 회사로부터 설 이후 회사에 안 나와도 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가족들에게 아직까지 해고사실을 얘기조차 못한 채 고향길에 올라야 할지 여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중소기업 사장들도 설을 앞두고 사정이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쌍용차 및 GM대우와 거래해온 한 자동차부품업체의 사장은 지난 20일 쌍용차에서 받기로 했던 결제가 감감무소식인데다 그나마 받아놓았던 어음조차 휴지조각으로 전락해 애를 태우고 있다. 그는 설 상여금은커녕 당장 사채로 4억원을 끌어들여 임금을 간신히 막아냈다고 하소연했다. 한계 상황에 직면한 중소기업들은 이러다가는 내년 설을 기약하기 힘들 것이라며 아우성치고 있다.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을 맞았지만 일선현장의 경제주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 어느 때보다 우울한 마음으로 고향길에 오르고 있다. 그나마 고향의 따뜻한 정이 모두의 아픈 마음을 보듬고 어루만져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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