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떠오르는 기회의 땅] 2-1. 파리ㆍ모스크바가 반나절

`서쪽으로는 프랑스 파리, 동쪽으론 러시아의 모스크바가 반나절 생활권` 오는 5월이면 동서 이데올로기 대립의 후유증으로 오랜 동면기를 거친 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발틱3국(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등 동부유럽 10개국이 모두 EU의 정식 가입국으로 탈바꿈한다. 거대 유럽경제권의 `역내 무관세혜택`을 받으며 낮은 임금과 땅값, 탄탄한 기초기술력을 자랑하는 이곳이 마침내 국제 자본의 `유럽내 1순위 투자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크게는 동구 10개국, 좁혀서 동유럽 4개국(헝가리,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에는 지금 한국기업들을 포함한 다국적 기업들이 영국, 스페인, 프랑스 등 서유럽에 마련했던 생산 및 물류거점을 속속 이전시키고 있다.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는 마치 서울의 한강처럼 짙푸른 도너강(독일명 도나우강)이 도심 한가운데를 흐른다. 부다(강 서쪽)와 페스트(동쪽)로 구분되는 이곳은 중세 유럽의 고즈넉함과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매년 1,000만명 가량이 다녀갈 정도의 관광명소다. 도나강의 체인브릿지를 건나 페스트시 쪽으로 두 블록 내려간 곳에 있는 안드랏시(Andrassy) 거리. 19세기 고딕풍의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이 거리의 허리쯤에 헝가리 투자청(ITD) 본부가 들어서 있다. 이곳에선 복잡한 투자여건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것은 물론 각종 민원사항들도 처리해준다. 헝가리에 투자를 했거나, 계획중인 외국기업이라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곳이다. 취재팀이 ITD를 찾았을 땐 헝가리 투자를 위해 인근국가에서 찾아온 7명의 사업가들이 한손엔 서류봉투나 가방을 들고 또 다른 손엔 휴대폰을 든 채 대기석을 가득 차지하고 있었다. “부다페스트(헝가리)의 투자환경을 확인하기 위해서 방문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봤는데 모두 (외국기업의 투자유치에) 적극적이다. 특히 이곳 공무원들의 서비스 자세는 최고다.” (찰스 알프스 Charles Arpsㆍ41ㆍ이탈리아 가구사업자) 그는 동유럽 물류중심지로 떠오르는 부다페스트 인근에 가구공장부지를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8월부터 이번까지 벌써 3번째 방문하고 있다고 했다. 레벤테 팔로스(31ㆍ남) ITD 해외담당 보좌역은 “EU가입이 확정된 후 투자청을 찾는 국외방문자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라며 “불과 일주일 전까지도 예약을 하지 않은 방문객은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다”고 말했다. 한국기업 역시 헝가리 투자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취재팀이 방문하기 직전 3개월간 한국계 기업인 10여명이 한꺼번에 찾아와 투자여건 등 이것저것을 확인하고 갔을 정도다. 외국자본의 관심은 부다페스트에만 집중된 것은 아니다. 프라하, 바르샤바 등 대표적인 관문도시들엔 현지실사에 나선 듯한 모습의 서유럽ㆍ미국ㆍ아시아계 비즈니스맨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취재팀이 확인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는 지금 도시와 도시를 연결시키는 4차선, 6차선, 8차선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EU본부가 가입대상 국가들의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을 위해 오래 전부터 재정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EU국가로서 어느 정도 국가인프라 수준을 맞추기 위한 중장기 프로젝트의 일환입니다.”(김상철 KOTRA 부다페스트관장) 부다페스트(헝가리), 프라하(체코), 바르샤바(폴란드) 등에서 조금 벗어난 외곽은 아직도 농촌 풍경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티 하나 없이 짙은 검정색 아스팔트가 쭉쭉 뻗어있는 고속도로 양 옆으로는 이제 막 공장터를 닦는 곳, 골조공사를 끝내고 외장공사를 하는 곳, 벌써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해 화물트럭들이 들락거리는 곳 등이 하나씩 둘씩 빠르게 자리잡고 있었다. [지금 이곳은… ] "법인세 낮추기" 경쟁 돌입 슬로바키아를 필두로 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 EU가입을 앞둔 동구 4개국은 최근 외국자본 유치를 겨냥해 법인세 인하 경쟁에 들어갔다. 지난해말 슬로바키아가 법인세를 기존 25%에서 19%로 인하했으며, 폴란드 역시 27%인 법인세율을 조만간 19%로 내린다. 체코는 현재 세율이 31%지만 오는 2006년부터 24%로 낮추기로 했고, 그동안 동구 4개국 가운데 가장 낮은 법인세율을 자랑해온 헝가리가 현재 18%인 세율을 12~15%선으로 더 끌어내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외국자본 끌어들이기`란 화두를 걸고 누가 더 낮은 세율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치열하게 경합을 벌이는 모습이다. 평균인건비 한국의 32~60% 오스트리아의 경제연구소인 WIFO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현재 평균 임금을 100으로 칠 경우 폴란드는 60, 헝가리와 체코가 40, 슬로바키아가 32에 불과하다고 진단했다. 다국적기업뿐 아니라 국내 기업들이 왜 동유럽 4개국에 주목하는지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지표다. 게다가 이곳 국가들은 사회주의 체제 당시부터 집중 육성시킨 탄탄한 기초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김상철 KOTRA부다페스트 관장은 “풍부한 저임 노동력과 탄탄한 기초기술을 바탕에 깔고 있는 동구 4개국으로선 글로벌 자본을 유입할 수만 있다면 `자본+기술`의 시너지 효과를 그 어느 곳보다 크게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럽 공략 전진기지" 국내기업 이전 가속 루마니아 수도 부카레스트에서 남동쪽으로 300㎞ 떨어진 대우해양조선의 망갈리아 조선소(DMHI). 취재팀이 이곳을 찾았던 지난 연말엔 마침 이 조선소 수리부가 망갈리아 호텔에서 흐드러진 크리스마스 파티를 펼치고 있었다. “파티에 참가하려면 1인당 50달러(루마니아 제조업 근로자들의 평균 월급은 110달러) 가 필요하다. 이곳의 다른 회사들은 꿈도 못 꾸지만 우리는 회사에서 참가비의 절반을 보조해주면서 연말파티를 권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회사가 `제2의 도약`을 선언해 모든 직원들이 유독 더 즐거워하는 모습이다.”(제말 메메차 망갈리아조선소 인사담당 부장) 이날 파티는 루마니아 전통음악의 흥겨운 리듬에 맞춰 마시다가 춤추고, 춤추다 먹으며 새벽 3시까지 이어졌다. 망갈리아 조선소는 전체 8개 부서가 매 주말마다 벌써 한달째 연말파티를 벌이며 2004년의 희망을 다졌다. 망갈리아조선소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대우해양조선의 동유럽 전초기지. 지난해 8월 이곳에서 정성립 사장 등 본사 임원진이 참석한 전략회의를 가졌을 정도다. 임문규 DMHI 사장은 “앞으로 이곳에선 기존의 소형 운반선 건조에서 벗어나 중ㆍ대형 선박 건조, 시장 다변화 전략을 펼칠 것”이라며 “매출을 획기적으로 높여 이곳을 주력 생산기지로 육성한다는 것이 본사 방침”이라고 전했다. 대우해양조선 처럼 동유럽 전역을 대상으로 한 국내 기업들의 `뿌리내리기`는 가히 폭발적이다. 삼성전자는 슬로바키아 공장을 `유럽시장 공략의 희망봉`으로 키우고 있다. 조규담 슬로바키아 법인장은 “디지털 TV, LCD 모니터, DVD 플레이어 등 최첨단 제품을 단계적으로 생산, 2005년에는 매출 12억 유로를 판매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브라운관(CRT) 업체인 LG필립스디스플레이는 체코 허리니체공장에서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8월 영국 웨일스 뉴포트의 3개 라인을 폐쇄하고, 철거한 설비를 모두 체코 공장으로 이전할 정도로 전력투구하는 모습이다. LG전자 역시 그동안 브라운관TV만 생산하던 폴란드 무와바 공장을 최첨단 디지털TV 생산기지로 전환시켰다. 회사측은 “PDPㆍLCDㆍ프로젝션TV 등 고부가가치 TV 제품의 생산 비중을 내년 50%, 2007년 70% 등으로 확대, 유럽 지역 프리미엄TV 시장 1위를 달성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대우일렉트로닉스도 올해로 유럽진출 10년째를 맞아 폴란드 법인을 디지털TV 생산 공장으로 탈바꿈시킬 예정이다. 특히 프로젝션ㆍPDP TV 등 디지털TV 생산은 물론 프랑스 디지털TV 연구소도 이곳으로 옮길 방침이다. 현대ㆍ기아차도 슬로바키아나 폴란드에 연산 20만~30만대 규모의 공장을 짓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오는 5월이면 유럽의 관세 장벽이 저절로 무너집니다. 저렴한 인건비와 법인세 인하 등 각종 투자 인센티브도 매력적입니다. 서유럽과 CISㆍ아랍권과 중앙아시아를 이어주는 입지적 조건 등은 대단한 보너스입니다.” 한국기업들이 왜 이렇게 동유럽에 주목하냐는 질문에 대한 조규담 삼성전자 상무의 단순 명쾌한 답변이다. <부다페스트(헝가리)=김형기기자, 바르샤바(폴란드)=최형욱기자 k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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