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8일부터 개최된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다녀왔다. 올해 우리나라에서는 28개 부스를 국가관으로 확보한데다가 16개 출판사가 개별 부스를 마련하여 참가했고, 국가관으로 마련된 한국관에는 78개 출판사가 도서를 출품하는 등 과거 어느 때보다 전시회 참여에 적극적이었다. 또 한국 도서의 저작권 수출 계약도 150만 달러에 이르는 등 국제출판시장 진출이 본격화된 것도 큰 수확이었다.
우리나라는 1961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처음 참가한 이래 지금까지 매년 참가하고 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까지 한국의 부스는 너무 작고 초라했다. 정부의 지원 없이 출협과 몇몇 출판사들이 작은 부스를 마련하고 약간의 도서를 전시하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한국의 기자들까지 창피하다느니 안 나가느니만 못하다는 등 호된 비판을 할 정도였다.
나는 출협 회장이 된 직후 어떻게든 국가관을 설치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문화부에 건의하고 경제기획원을 들락거리며 어렵사리 예산을 확보했다. 그렇게 해서 98년 처음으로 한국관을 설치하게 됐다. 정부의 재정적 지원에 힘입어 부스 규모도 늘리고 인테리어에도 투자했으며 참가 출판사에는 거의 무료이다시피 전시공간을 제공하자 많은 출판사들이 다투어 참가하게 되었다.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들을 위해 영어 및 독일어로 번역한 초록도 만들고 전시용 도서 목록을 영어와 독일어로 제작하여 배포하면서 한국관은 세계 어느 나라의 국가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게 됐다. 전시기간 중에는 세계 유명 출판사들이나 몇몇 국가관에서 리셉션을 개최하는 것이 상례였다. 2001년 제53회 전시회에서는 처음으로 한국관의 리셉션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IPA 회장단과 상임이사들, 세계 각국의 저명한 출판인들과 독일 정부의 고위급 인사, 한국 영사, 교민 대표 등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신문과 방송사 기자며 PD 등의 관심도 상당했다. 리셉션이 끝나자 현지 한국관광공사 지사장은 내 손을 꼭 잡으며 고맙다고 감격해 했다.
유럽에서 한국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나라여서 관광 홍보에 애를 먹고 있는데 이번 리셉션이 한국을 홍보하는 최고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이었다. 대사관과 영사관 직원, 교민들 역시 다투어 악수를 청하며 고맙다는 말을 거듭하는 것을 대하며 왠지 콧등이 시큰했다. `이것이구나! 이게 바로 한 핏줄을 이어받은 민족애라는 것이구나.` 하는 가슴 찌르르한 감동을 느꼈다.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는 76년부터 한 나라를 주빈국으로 초대하여 그 나라의 문화 전반을 소개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아시아권에서는 86년에 인도가, 90년에는 일본이 주빈국으로 초대됐고 올해에는 러시아가 주빈국이었다. 처음 주빈국 초대를 할 때는 도서전기간에 국한되던 것이 최근에는 전시관은 물론 시가지 전역으로 확대되어 주빈국 문화 전반을 알리는 큰 행사로 발전하고 있어 주빈국 선정에 따른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올해 주빈국인 러시아는 이번 도서전에 200개의 출판사와 100명의 문인들이 참가하여 토론과 리셉션이 연일 이어졌고 지난 9월부터 2004년 2월까지 음악, 미술, 무용, 영화 등 150여 가지의 다양한 문화행사를 펼침으로써 프랑크푸르트는 물론 독일 전역 `러시아의 해`로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2004년 주빈국은 아랍에미리트, 그리고 한국은 2005년의 주빈국으로 선정됐다. 한국에 대한 소개가 미흡하고 편견이 심한 유럽에 한국의 다양한 문화와 전통을 한꺼번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긴 셈이다. 정부에서도 큰 관심을 갖고 예산 지원책을 마련한다니 지금부터라도 착실히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또 2008년 서울에서 개최되는 IPA(국제출판협회) 총회를 위한 준비도 잊지 말고 챙겨야 할 것이다. 바야흐로 문화가 각광 받고 있는 문화산업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다.
<정문재기자 timothy@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