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또 하나의 권력, 외국자본

이용웅 <경제부장 >

각종 사기사건에는 그대로 시대상황이 담겨 있다. 해방 이후 지난 90년대까지 언론매체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사기사건은 주로 의사ㆍ검사 등 사자 돌림의 직업을 사칭한 남성들이 여성을 상대로 벌인 사기사건이 많았다. 그러나 요즘에는 의사나 변호사들도 그리 형편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한때 은행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았던 의사들도 요즘에는 대출받기가 어려워졌다는 얘기도 들리고 사법고시를 합격해도 실업을 걱정할 수 있다고 하니 세상 변하는 속도가 정말 어지러울 정도이다. 긍정적 역할 불구 부작용 많아 사기꾼들이 ‘사자 돌림’과 함께 가장 애용하는 사회적 지위로는 바로 대통령의 친인척을 행세하는 것이다. 대통령 친인척을 사칭해 사람들을 현혹해온 사기사건은 이루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이승만 대통령 시절의 ‘가짜 이강석 사건’이다. 이기붕 부통령의 친아들로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로 들어가 온갖 위세를 부렸던 이강석을 사칭한 사기사건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자유당 정권 내내 ‘가짜 이강석 신드롬’이 사회적 현상이 될 정도였다. 이후 서슬퍼런 군사정권 때는 물론이고 민주화 정권이 들어섰을 때에도 과감하게 대통령의 친인척을 사칭해 한탕 하다가 덜미를 잡히는 경우는 허다했고 그런 식으로 걸려봤자 신문 사회면의 1~2단짜리 기사밖에 취급을 받지 못했다. 실제 대통령 친인척이 일으킨 비리사건도 많았지만 친인척을 사칭한 시기사건은 언제 어디서나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일상적인 사건이었다. 이들 사기사건의 공통점은 모두 권력을 위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권력의 향방에 민감한 사회 분위기에 편승하는 것이 사기의 기본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기사건의 이 같은 본질에 비춰볼 때 최근 발생한 한 사기사건은 우리에게 쓴 맛을 다시게 만든다. 해외 유명 펀드회사의 아시아 지역 총책임자를 사칭하며 수십억원대의 사기행각을 벌이고 고급 사교클럽에 가입해 10년 연하의 유명 대학 여교수와 결혼까지 한 40대 유부남 재미교포가 경찰에 구속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재미교포 토머스 리(46)씨는 미국 보스턴 주재 유명 펀드회사의 아시아 지역 총책임자를 사칭하면서 국내 벤처기업인, 회계법인 관계자, 부동산 임대업자 등과 친분을 쌓으며 대형 사기극을 벌였고 급기야 고급 사교클럽에 가입해 유명 대학 여교수와 사기결혼까지 하는 즐거움을 맛보다 결국 쇠고랑을 차게 됐다는 것이다. 외국계 유명 펀드가 이 시대의 ‘권력’이 됐음을 반증하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때마침 국세청이 몇몇 외국계 자본에 대한 세무조사에 나서고 있어 국내외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I외환위기(IMF) 이후 외국자본은 한국경제에 두 얼굴을 가진 존재였다. 외환위기 이후 달러부족에 시달리고 국제신인도가 바닥을 기고 있던 한국경제에 외국자본은 말 그대로 구원투수였다. 외국자본은 우리의 빈 곳간을 채워주는 대신 그만큼 많은 이익을 보았다. 한덕수 부총리는 얼마 전 국회에 출석해 “골드만삭스는 부실 투성이의 진로 채권을 인수했다”며 “그때 만약 진로가 끝까지 버림받았다면 결국 망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당시 외국자본의 긍정적 역할을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건전성 유지 위해 감시·견제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일각에서는 천문학적인 이익을 내고도 세금 한푼 안내는 외국계 자본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면 외국계 자본 역시 국세청의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외국계 자본에 대한 과세 당국의 조사에 불안감을 느끼는 분위기도 우리 사회에서는 감지된다. 참여정부가 국수주의적으로 보이게 되면 좋을 일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 탓도 있고 그 속에는 외국계 펀드가 이미 우리 시대의 새로운 ‘권력’으로 자리잡은 속사정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에 대한 감시는 바로 그 권력을 건전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게 원칙이다. 대기업이라는 또 하나의 권력 역시 사회 곳곳에서 감시와 견제를 받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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