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企業易轉의 교훈
이현우 hulee@sed.co.kr
지난 90년대 초반쯤이던가. 세계적 컨설팅 기관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자동차산업 전망 보고서를 내놓은 적이 있다. 21세기, 즉 10년 후에는 10개 회사만 살아남아 시장이 재편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주인공은 제너럴모터스(GM) 등 미국의 ‘빅3’, 일본ㆍ유럽 업체들이었고 한국의 현대자동차는 당연히(?) 그 명단에 없었다.
그 무렵 연말 결산을 앞둔 삼성그룹에는 비상이 걸렸다. 발단은 현대중공업이었다. 그해 현중의 순이익은 3,000억원으로 추정됐는데 이게 삼성그룹 전체의 이익과 맞먹는 것이었다. 삼성의 충격은 컸다. 소니ㆍ도시바 등 일본 업체는 감히 넘보지 못할 상대여서 그렇다 쳤지만 이제 국내의 1개 기업에 비교될 정도가 됐으니 그럴 만도 했다.
처지 뒤바뀐 GM과 현대차
그리고 10년 남짓 세월이 흐른 지금 이들 기업의 현재 모습은 사뭇 교훈적이다. 미국의 자존심이라던 GM은 세계의 조롱거리가 됐다. 판매 부진으로 시장점유율이 갈수록 떨어지고 신용등급은 정크본드 수준으로 바닥 모를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포드의 신세 역시 딱하다. 일본 닛산은 르노에 넘어갔고, 현대차의 스승 격인 미쓰비시도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전자 업계의 소니도 최고경영자 수혈, 대대적 감원에 나서는 등 비틀거리고 있다.
반면 ‘사라질 운명’의 변방 업체 취급을 받던 현대차는 세계 중심부를 향해 눈부시게 질주 중이다. 미국 소비자가 뽑은 가장 결함 없는 차, 중국을 비롯해 각국에서의 판매 1위 등극, 세계 유력 언론의 잇따른 찬사 등 해외에서 더 많이 팔리고 더 알아준다.
일본을 배우고 따라가기에 급급하던 삼성전자는 이제 그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삼성의 순이익은 10조원으로 일본 전자 업체 상위 10개사의 이익을 합친 것보다 두 배나 많다. 10년 전 삼성전자 전체 이익이 소니 1개 사업 부문의 이익과 비슷했으니 괄목상대도 이런 괄목상대가 없다.
이들의 처지가 왜 이렇게 변했을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핵심은 위기의식과 리더십으로 요약할 수 있다. 삼성ㆍ현대는 국내 1위였지만 그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글로벌화로 세계 일류가 아니면 생존이 어렵게 된 것이다.
환경 급변은 위기의식을 불렀고 이는 혁신의 몸부림으로 이어졌다. 피나는 구조조정, 내실 위주 경영, 기술 개발과 품질 향상에 주력했다. 이를 선도한 것은 총수였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품질경영’을 외쳤고, 이건희 삼성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며 끝없는 변화를 다그쳤다.
반면 GM은 환경 변화와 위기에 둔감했다. 경쟁자들의 추격이 맹렬한데도 시너지 효과가 없는 인수합병을 통한 몸집 불리기에 주력했다. 퇴직자에 대한 연금 및 보험료 지원 등 지나친 복지 비용은 경영의 숨통을 조였다. 혼자서 시장을 좌우할 때는 별 탈이 없었으나 경쟁 격화로 그 비용을 감당하면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주 원인은 위기의식과 리더십
당연히 위기감을 갖고 변화를 모색해야 했는데도 안주했다. 병은 깊어졌고 마침내 몰락 위기까지 몰린 것이다. 추락의 밑바닥에는 강한 노조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과다한 임금 인상 요구와 매년 파업이 벌어지는 국내 자동차 업계에 시사하는 바 크다. 소니의 고전도 환경 변화에 대한 감각이 무뎌진 데서 온 것이다.
현대ㆍ삼성과 GMㆍ소니의 ‘기업역전(企業易轉)’이 알려주는 또 하나의 의미는 지배구조에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GM과 소니는 전문 경영인이 이끌고 있지 않은가. 지금 우리는 정부가 기업지배구조에 간섭하고 있지만 그게 반드시 옳은 것일 수 없다는 얘기다.
현대차ㆍ삼성전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외국의 찬사는 언제 질시와 견제로 바뀔지 모른다. 이미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인생은 로또로 역전이 가능하다지만 기업역전에는 그게 통하지 않는다. 오직 뿌리고 가꾼 대로 거둘 뿐이다. 기업인ㆍ노동자ㆍ정부가 모두 제 할 일에 충실해야 한다.
입력시간 : 2006/01/18 1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