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불탄 국보 1호 현장에서

[기고] 불탄 국보 1호 현장에서 김란기(한국역사문화연구원 대표) 부끄럽고 비통한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문화재청 직원들은 팔장을 끼고 있고 소방관들은 허둥대고 있다. 방화냐, 누전이냐 제각기 해석을 하고 있다. 국보 1호 숭례문이 불타고 있는데 방화와 누전의 차이가 문화재청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할 수 있는가. 비단 국보 1호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문화재 관리시스템의 총체적인 문제이다. 이벤트성 문화재 행정의 산물이기도 하다. 국가문화재 관리의 예견된 단면이 드러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문화재는 현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쓰고 버리고 가는 것이 아니다. 문화재는 우리가 잠시 보관하다가 다음 세대에게 그대로 전달해주고, 그 세대는 또 그 다음세대에게 전해줘 수백 수천년을 고스란히 전해 내려가는 역사인 것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 문화재 행정은 문화재가 마치 우리의 소비재인양 낭비로 가고 있다. 시민에게 개방한다는 명분으로 전시 행정을 일삼고 있다. 숭례문의 경우도 바로 그 전철을 밟아왔다. 지난 2006년 3월 섬처럼 있던 숭례문을 시민들이 접근하기 쉽게 화단과 보행로를 만들어 이어주었다. 마치 민주화된 사회의 시민중심 상징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에 다름 아니다. 그처럼 성숙된 문화향유를 위해서는 시민들 자신이 문화재를 지킬 줄 알거나 문화재청이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아직 우리 사회는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최근의 문화재청은 방자한 모습까지 보였다. 화재현장에는 직원 몇 명이 나와 있을 뿐 문화재청장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무려 5시간 동안이 불타고 있는데도 말이다. 결정권 없는 직원들은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 국보 1호라는 부담감은 소방대원들에게도 신속한 진화를 하는 데 걸림돌이 됐다. 문화재청이 나서서 신속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도왔어야 했다. 숭례문이 불타고 있다는 소식에 많은 시민들이 한밤중에 나와 속을 태웠다. 불길이 치솟거나 건물 일부가 무너져 내릴 때 많은 시민들은 비탄의 절규를 내뱉었다. 안타까운 탄식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고 문화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굴렸다. 초기 대응에 실패했고 목조문화재 전문 소방팀도 없었으며 문화재청에서도 늑장 대처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건축물의 구조를 잘 알고 그에 대응한 진화작업을 진행했어야 했다는 뒤늦은 진단도 나왔다. 한국 목조건축은 부재(목재)가 굵기 때문에 불에 타는 시간도 길다. 그래서 5시간이나 탔던 것이다. 그만큼 진화할 수 있는 시간도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럼에도 전문적인 소방팀 없이 일반 화재와 같이 대응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외국의 경우에는 이 같은 재해예방을 위해 정기적으로 대대적인 소방훈련을 실시한다. 우리도 물론 한다고는 하지만 형식에 치우치는 면이 크다. 실질적인 훈련이 돼야 하고 거기에 시민들도 참여해 문화재 보존의식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돼야 한다. 나아가 문화재 소방 훈련이 관광 상품화된 외국의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분수의 축제처럼 보이는 외국의 소방훈련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한편 화재에 취약한 목조건축이 대부분인 우리나라 사찰건축에는 이번 화재만큼이나 큰 위험에 노출돼 있는 중요 문화재가 많다. 해인사의 팔만대장경 장경판고나 고려시대 건축이 잘 보존돼 있는 다른 사찰들도 있다. 여기에서는 그 사찰에 기거하는 스님들과 소방방재청ㆍ문화재청이 협력해 방재대책을 세우고 훈련을 합동으로 해야 할 것이다. 600년을 지탱해온 국가 상징 문화재가 한낱 한줌의 재로 불탔다. 이제 우리는 이를 큰 교훈으로 삼아 다시는 그와 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전국의 문화재에 어떻게 재해방비를 해야 할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고 철저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또 복원공사 역시 조급하게 처리할 것이 아니라 우선 기록보존 차원에서 철저하게 조사하고 그 조사에 기초해 장기적으로 원형 복원을 구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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