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수필] 애호박 상품

安炳璨(경원대 교수)런던에 살면서 조선호박을 심어「조익점」이라는 별명을 얻은 사람을 알고 있다. 약7~8평의 정원이 붙어 있는 조그마한 주택에 세들어 살게된 「조익점」씨는 그 좁은 땅을 마음껏 활용하고 싶었다. 그는 문득 호박전을 붙여 술안주로 한잔하면 어떨까하여 고향의 부모에게 편지를 썼다. 몇달 후에 도착한 호박씨를 뒤뜰에 심었더니 가을에 탐스러운 애호박이 30여개나 열렸다. 처음에는 기후관계로 재배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했으나 막상 수확을 하고보니 대단히 흡족했다. 호박잎을 넣고 끓인 호박장과 호박전을 넉넉하게 해 먹었다. 그의 이웃에 사는 영국인 역사학자는 『당신이 한국산 호박을 영국에 최초로 전수한 조익점(문익점을 빗대어서)일지도 모른다』고 농담을 했다는 얘기이다. 한국의 비닐하우스에서 본격적으로 애호박을 재배하기 이전의 일이다. 여러해 전에 오래동안 살아온「이방인의 밀실」을 벗어나 시내 주택으로 옮겼다. 아파트는 수직과 좌우로 줄을지어 수십세대가 집합해 살지만, 사는 내용을 보면 세대마다 밀실속에 들어가 따로따로 흩어져 사는 꼴이다. 새로 이사간 데는 앞집 할머니가 손뼘만한 마당에 호박넝쿨을 키우는 골목집이었다. 그런데 몇해전 부터는 골목안 호박넝쿨이 자취를 감추었다. 재개발 주택이 자꾸 들어서기 때문이었다. 호박은 한해살이 넝쿨풀이다. 여름에 노란 단생화(單生花)가 피었다가 길둥근 모양의 애호박이 달리게된다. 런던 주택 텃밭에서 자란 호박넝쿨이나 서울 골목길 담을 타고 퍼진 호박넝쿨을 생각한 것은 농협의 비리때문이다. 검찰이 조사해보니 전국 각처의 농협에 마치 호박넝쿨처럼 비리가 퍼져 있었다고 한다. 이제는 애호박이 흔해져서 사시사철 사먹을 수 있다. 서울 가락시장은 호박을 과채류로 분류하여 연중 거래한다. 재래종인 조선애호박은 주로 10KG 한 상자(28개들이)에 3만원전후로 팔린다. 하루평균 입하량은 150톤 정도, 청과물 전체물량의 2.4%정도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애호박은 광주, 광양, 진주, 공주, 평택, 춘천 등 전국 67개 지역에서 재배하고 있다. 우리는 호박넝쿨에서 위안을 찾는다. 넝쿨에 짓든 삶의 기억 때문이다. 농협의 호박넝쿨 같은 비리는 삶의 기억을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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