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있는 그대로의 이순신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죠"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 펴낸 김태훈 은행연합회 부장

10년간 직장생활 틈틈히

난중일기 등 원문까지 뒤져

한층 객관적인 모습 그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도 100일이 넘게 흘렀다.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사고 이후 정부 대응과 정쟁만 일삼는 정치권의 모습은 실망 그 자체다.

때문일까. ‘난세는 영웅을 부른다’는 말처럼 이순신이 부활했다. 평범한 직장인인 김태훈(사진) 전국은행연합회 부장의 손을 통해서다.


그가 최근 펴낸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사진)’는 10년 전에 나왔던 ‘이순신의 두 얼굴’의 후속작 성격을 띤다.

저자는 지난 10년간 직장 생활 틈틈이 ‘선조실록’과 ‘난중일기’ 등의 한자 원문까지 꼼꼼히 뒤져 한층 더 객관적인 이순신의 모습을 구현했다.

김 부장은 “이순신의 모습을 다각 도로 입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애썼다”며 “처음부터 다신 쓴다는 각오로 작업에 임했다”고 말했다.


그는 “통상적으로 난세의 영웅을 다루는 책처럼 ‘이순신은 무조건 위대하다’고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실수도 하는 ‘있는 그대로의’ 이순신을 알리고자 주력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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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두 얼굴’에서 이순신의 발명품으로 알려진 거북선이 조선 태종 때 이미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던 저자는 이번 책에서는 이순신이 한산도에 주둔할 때의 전술, 이순신이 주장한 수륙합동공격, 이순신의 실각 등에 대해 세세히 다뤘다.

여전히 많은 학자는 일본 적장 가토 기요마사의 군대를 바다에서 차단하라는 조정의 지시를 전하려고 도원수 권율이 1597년 1월13일 한산도로 출발했지만 적은 그때 이미 바다를 건넜고, 그래서 이순신이 적을 바다에서 막는 것은 이미 늦었는데도 선조가 이순신을 하옥했다고 주장하며 이순신을 옹호한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 대해 “1597년 1월2일 ‘선조실록’에 선조가 적장의 도해를 차단하라는 지시를 이순신에게 전달하라고 명한 기록이 있다”며 오히려 이순신에게 선조의 명령에 따를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고 반박한다. 또 일부 학자들은 이순신이 수차례 요청한 수륙합동공격에 응하지 않았던 조선 조정의 무능을 탓하지만 당시 정황상 육군의 전력이 미약해 현실적으로 수륙합동공격은 펼치기 어려웠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처럼 이순신도 실수를 했지만 그럼에도 “무수한 시련 속에서 결코 타협하거나 비겁하게 물러나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는 것이 결국 저자가 하고 싶은 얘기다.

“이순신은 결코 태어날 때부터 영웅, 하늘이 내린 영웅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길을 우직할 정도로 묵묵히 걸었다. 그는 진정 ‘평범’에서 ‘비범’으로 나아갔다”는 게 그의 평가다.

저자는 당시 상황을 지금에 빗대 “7년 전쟁 때보다 더 한심한 작태가 우리 주위에 벌어지고 있다”며 “선조가 자신의 입맛대로 공신 선정을 하며 나라를 농락한 것처럼, 오늘날에도 ‘나라의 녹을 먹는 자’가 국민을 위하기는커녕 자신과 윗사람의 입맛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저자는 “직장 다니며 책을 쓰려면 친구와 술, 대화를 줄여야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며 “많은 이들이 이순신의 참 모습에 공감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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