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초 저항적 지식인의 고통 그려
■ 폭설(김영현 지음/창작과비평사 펴냄)
1990년 '김영현 논쟁'을 촉발했던 소설가 김영현이 오랜만에 새 장편소설 '폭설'을 펴냈다. '풋사랑'이후 9년만의 장편이고, '내 마음의 망명정부' 이후 4년만의 소설이다.
1984년 단편소설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김영현은 섬세한 필치로 한국현대사의 아픔을 담아내고, 우울하지만 정직한 지식인의 고뇌를 응시한 문제작을 잇달아 선보이면서 "1980년대 문학이 1990년대 문학으로 옮겨가는 과도기를 대변했다"는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평론가 권성우와 정남영 등이 이를 둘러싸고 벌인 논란이 이른바 '김영현 논쟁'이다.
90년대 문학계를 대변했다는 김영현의 21세기 새 작품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내가 살아온 시대를 그리고 싶었다. 아니, 내가 사랑했던 것들, 그 사라진 시간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에서 시대와 삶의 고뇌를 따뜻하게 응시하는 시선이 여전함을 읽을 수 있다.
새 소설 '폭설'의 시대배경은 80년대 초. 70년대 후반 변혁운동에 몸 담았다가 군에 강제 징집된 주인공 장형섭이 제대한 뒤 겪게 되는 온갖 시련들이 사실적인 필치로 그려진다. 형섭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경찰의 감시와 미행 집요하고 잔인했고, 그로 인해 뜻하지 않게 옛 동지들에게 불행을 안겨주는가 하면, 사랑하면서도 헤어져야 했던 연인 연희와는 비극적인 종말을 맞는다.
소설의 주인공 장형섭의 인생은 작가 자신과 닮았다. 대학 4학년때 구속, 2년간 징역 뒤 강제징집, 1982년 전역. 때문에 소설은 허구처럼 느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