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고건 대행에게 힘을 실어주려던 야당은 15일 고 대행이 사실상 이를 거부하자 난감해 하고 있다. 전폭적 지원을 다짐한 마당이라 드러내놓고 발톱을 세울 수도 없는 처지다. 게다가 `사면법 개정안 거부권`이라는 암초도 곧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여 속앓이가 깊어만 간다.한나라당 홍사덕 총무는 이날 “사리대로 하면 `국회로 나오십시오`라고 말씀 드려야 하나 괴롭히는 결과가 되기에 고 대행의 입장을 난처해지지 않는 방향으로 처리하겠다”며 시정연설 철회를 시사했다.
그는 “이 모두가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의 견제 때문”이라며 여권 탓을 하기도 했다. 민주당 김영환 대변인도 “고 대행이 시정 연설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우리 입장이지만 총리 사정도 있을 것이고, 다른 당과 협의도 필요하다”며 말끝을 흐렸다.
대통령의 특별사면시 국회의 의견을 구하도록 한 사면법 개정안을 고 대행이 거부할 경우 대응하는 문제도 야당에겐 뜨거운 감자다. 법무부가 거부권 행사를 건의키로 방침을 정한 가운데, 고 대행의 선택은 향후 대야 관계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이강두 정책위의장은 “정부가 국회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며 “국회에 재의를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거부권 행사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실제 고 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재의에 나설 지에 대해서는 입장표명을 유보했다. 향후 정국에서 고 대행과 대립각을 그어야 하느냐는 간단찮은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김영환 대변인은 “논의를 거쳐 입장을 정하겠다”며 원론적 입장만을 밝혔다.
<이동훈 기자 dh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