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바가지」의 경제학/김이영 한양대 의대 교수(서경논단)

피서철이 왔다. 해마다 있는 일이지만 『극성스러운 바가지 상혼 어쩌구…』하는 한탄과 이를 나무라는 질책이 어김없이 쏟아질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꽤 오래전 일이다. 설악산의 금강굴 입구에서 한 청년이 몇 개의 커다란 물통을 놓고 보리차에 적당히 설탕을 탄 얼음냉차를 팔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냉차 한잔 값이 설악파크호텔의 커피 한잔 값과 같다는 데 있었다 『바가지도 분수가 있지, 냉차가 호텔커피보다 비싸다니!』하면서 할 수 없이 사 마시는 사람, 목은 타지만 바가지 상혼은 이 사회에서 뿌리 뽑아야 한다고 일장 훈시를 하면서 안 사 마시는 사람, 값은 고사하고 그곳에 물이 있다는 사실이 반가워 「고맙다」면서 사 마시는 사람 등 가지 각색의 사람이 등장했다. 물장수 청년의 말인 즉 『이 물통을 이곳에 옮기는 데 돈이 얼마나 들었는지 아세요. 그 비용 다 제하면 30% 장사도 안됩니다』였다. 이 청년의 냉차값은 바가지인가, 아닌가? 피서가기 전날 가까운 정비소에서 차를 점검하고, 단골 가게에서 미리미리 각종 음료수를 비롯하여 피서지에서 쓸 물건을 꼼꼼히 챙긴 다음 피서를 떠난 사람이 있다고치자. 그가 서울에서 산 사이다 한병값은 1천원이었는데 계획에도 없는 피서를 벼락치듯 떠난 사람이 경포대에서 같은 값에 사이다를 샀다면 이것은 공평한가, 불공평한가? 또 준비없이 떠난 사람이 피서지의 비싼 사이다 값을 바가지라고 호통을 친다면 그는 공평한 사람인가? 우리는 걸핏하면 바가지 상혼을 나무란다. 그러나 바가지 상혼을 나무라려면 그 사람이 싸게 구입한 상품을 사는 사람의 약점을 이용해서 비싸게 파는 것인가, 아니면 그만한 비용이 추가로 들었기 때문에 비싸게 받는 것인가를 따져본 후에 나무라야 한다. 또 상품은 효용가치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는 평범한 이론에 맞는 경우라면 비싸다고 나무라기만 할 일도 아니다. 방이 모자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터무니 없이 비싸게 받는 민박은 나무랄 수 있지만, 한철 바라고 벌인 가게인데다 비싼 임대료 등 비용이 많이 들어서 상품값을 비싸게 받는 것을 나무라는 것은 문제가 있는 행동이다. 더구나 자기가 미리 준비하면 싸게 구할 수 있는 데도 그런 준비성도 없이 무턱대고 비싼 것만 탓하는 사람은 더욱 더 나무랄 자격이 없다. 다만 부당하게 이익을 남겼다면 그것은 세금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다. 로마의 베네치아 광장앞의 한 가게에서는 바에 기대어 마시는 콜라, 탁자에 앉아서 마시는 콜라, 그냥 사가지고 나가는 콜라, 가게앞 탁자에서 거리를 구경하면서 마시는 콜라 값이 다 다르다. 매우 불공정거래인 것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가장 합리적인 장사라고 수긍하게 된다. 우리 나라는 공정거래라는 명분으로 많은 물건에 권장 소비자 가격이라는 굴레를 씌워 놓고 있다. 평당 1천만원이 넘는 강남 땅에 만든 주유소나, 평당 50만원짜리 땅에 만든 양평의 주유소가 왜 휘발유값을 똑같이 받아야 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공평한 것 같지만 매우 불공평한 제도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니 이런 허점이 있는 권장 소비자 가격, 공정가격이란 제도의 허실을 다시 짚어보아야 한다. 이처럼 겉으로는 공평한 것 같으면서도 내용은 불공정한 제도가 우리 경제질서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이 경제학에는 아마추어인 한 정신과의사의 소견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약의 표준 소매가격제도다. □약력 ▲39년 경기 평택생 ▲서울대 의대졸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차기회장 ▲보건복지부 중앙정신보건 심의위원 ▲저서=시사평론집 「세상을 바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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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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