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은행없는 은행이 온다] <3> 사라지는 금융의 경계

IT공룡 이어 e마켓이 금융 흡수… 온라인뱅크도 속속 등장

온라인 쇼핑회사 알리바바 MMF 수탁액 81조 달성

中 민간은행 사업자 선정

금산분리에 갇힌 한국금융 변화 맞춰 새 패러다임 필요



'뱅크월렛카카오'에 돈을 예치하고 상점에서는 '구글지갑'으로 결제를 한다. 여유자금은 페이스북의 펀드 상품으로 운용한다.

먼 미래까지 갈 것도 없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교통카드나 커피전문점의 기프트카드에 돈을 '예금'하고 필요한 곳에서 '결제'를 한다. 눈앞에 와 있는 새로운 금융생활상에 은행의 자리는 없다.


대신 은행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메신저나 검색엔진·커피로 각인된 기업들이 은행으로 대표되는 전통적 금융을 대체해가고 있다.

입출금과 결제·대출·투자까지 범위 또한 전방위다. 은행이나 카드사 등의 금융거래 도구였던 정보기술(IT)과 유통이 반대로 금융을 삼키고 있는 형국이다.

이제 은행은 은행이 아니라 페이스북이나 구글 같은 글로벌 IT기업이나 스타벅스와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은행 대체하는 IT업체들=늦어도 오는 9월이면 전세계 1억4,000만명의 가입자를 둔 카카오톡과 전국 15개 은행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뱅크월렛카카오(뱅카)'가 출시된다.

최대 50만원을 '뱅크머니' 형태로 뱅카에 충전, 연락처가 등록된 사람에게 송금을 할 수 있다.

온·오프라인 결제는 물론 뱅카와 호환이 되는 은행 자동화기기(CD·ATM)에서 출금도 할 수 있다. 소액이기는 하지만 입출금과 송금·결제까지 은행에서 하는 업무의 대부분을 서비스하는 것이다.


구글과 페이스북도 이런 서비스를 한다. 구글은 '구글월렛'을 내세워 금융 서비스 제공에 들어갔고 13만명의 가입자를 자랑하는 페이스북은 최근 아일랜드 중앙은행에 모바일 결제와 금융 서비스 등 전자화폐 서비스를 취급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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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IT업체가 은행의 서비스를 대행하는 수준을 넘어 민간은행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4월 발표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회사인 '알리바바'와 중국에서 가장 많은 가입자를 거느린 메신저 프로그램 '큐큐(QQ)'를 만든 '텅쉰' 등 IT기업들이 정부가 추진하는 민간은행 사업자로 선정됐다.

앞서 알리바바는 지난해 6월 온라인 전용 머니마켓펀드(MMF) 상품 '위어바오'를 출시해 3월 기준으로 5,000억위안(약 81조9,000억원)의 수탁액을 달성하는 등 금융사들을 제치고 중국 최다 MMF 판매사로 올라섰다. 알리바바는 중국 최대 온라인 마켓인 자회사 '타오바오'에서 거래하는 중소 사업자 40만명에게 소액대출 사업까지 벌이고 있다. 이들은 이미 지점 없는 은행인 셈이다.

은행이지만 점포가 없는 '온라인 뱅크'도 곳곳에서 태동하고 있다. 2009년 문을 연 독일의 피도르은행이 대표적 사례다. 피도르은행의 모든 업무는 페이스북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이뤄진다.

고객들이 은행 홈페이지에 올린 기존 상품에 대한 평가와 새로운 상품 아이디어는 은행의 영업에 반영돼 다시 고객들에게 돌아간다.

◇우물 안 한국 금융…IT 공룡에 잠식되나=문제는 우리나라의 금융과 IT기업들이 급변하는 글로벌 금융시장 환경에 적응할 면역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는 중국과 달리 금융과 산업을 분리한 금산분리 원칙이 있기 때문에 금융과 다른 업종 간 결합이 제한적이다.

최필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팀장은 "중국에서는 민간기업의 금융업 진출이 특이 사례가 아니다"라며 "알리바바나 텅쉰 등은 자체 온라인 결제망이 있는데다 거대한 가입자 풀은 물론 지명도까지 갖췄기 때문에 금융업 진출이 상대적으로 수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제도가 문제라면 수정할 수 있지만 '규모와 범위'에서 이미 경쟁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고객 수가 가장 많은 은행도 거래자가 3,000만명이 안 되는 데 비해 페이스북은 전세계적으로 13억명, 알리바바는 5억명의 회원이 가입돼 있다. 수많은 회원들을 통해 축적된 빅데이터는 금융에 진출하는 IT업체들의 비장의 카드다.

회원 수뿐만 아니라 정보력에서도 앞선다. 알리바바의 대출사업 부실채권(NPL) 비율은 약 0.06%에 불과한데 이는 중소 사업자들의 거래 데이터와 매출성장률, 고객 평가를 신용평가 모형에 반영한 결과라는 평가다. 박종복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 리테일본부 부행장은 "미국에서는 6년 이내 지점의 50%가 사라지고 이베이나 아마존 같은 온라인 유통업체들이 금융을 흡수할 것이라고 하는데 1~2년 내에는 어렵지만 머지않아 실현 가능한 이야기"라며 "우리 은행들은 아직 발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일본의 경우 아날로그 방식으로 업무를 처리하던 과거부터 지금까지 지점을 2,000개 수준으로 유지해온 반면 우리나라는 8,000개에 달한다"며 "이제는 은행들이 큰 지점과 여러 장의 서류를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준성 하나금융지주 미래금융팀 상무는 "구글과 같은 서비스의 경우 국경이 없고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용하고 있는 익숙한 서비스라는 점에서 막강한 경쟁력이 있다"며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금융 서비스의 급격한 디지털화는 다가올 뱅킹 서비스 변화의 서막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안유화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시장에서 IT가 은행의 온라인 뱅킹 서비스 대행에 머무르는 사이 페이스북은 전자화폐, 즉 새로운 통화를 발행하는 새로운 금융업 패러다임 자체를 구상하고 있다"며 "극단적으로 말해 10~20년 안에 은행이 사라질 수도 있는 상황이며 IT기업과 은행이 적극적으로 융합, 새로운 금융 패러다임에 맞는 전략을 세워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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