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담합 아파트값 왜 안떨어지나

아파트 값 담합을 막기 위해 정부가 58개 단지를 지정했으나 한달 가까이 지난 현재 전혀 가격하락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57개 단지는 시세변화가 없고 1개 단지는 도리어 소폭 상승했다는 게 부동산 정보업체의 조사결과다. 서울 전체의 아파트 값이 2주 연속 하락하는 등 부동산시장이 약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데 왜 ‘담합’ 아파트단지만 정부를 비웃듯 승승장구할까. 정부가 실태조사를 통해 담합행위를 확인했던 만큼 더욱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말해 주택시장이 일종의 불완전경쟁시장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담합으로 지정됐더라도 해당 아파트 주민들은 담합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지난 80년대 미국에서 매사추세츠의 파탄(Massachusetts Debacle)으로 알려진 사태는 부동산시장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80년부터 87년까지 매사추세츠는 소형 컴퓨터와 첨단 산업무기 등 주력산업에 힘입어 엄청난 호황을 구가했다. 87년 실업률은 전국 평균의 절반 수준에 지나지 않았고 84년부터는 부동산 경기가 과열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PC가 시장지배력을 발휘하면서 소형 컴퓨터시장을 잠식했고 탈냉전 시대로 접어들자 레이건 행정부의 국방예산도 감소하기 시작했다. 결국 88년부터 매사추세츠의 경기가 곤두박질치더니 89년에는 실업률이 10%에 육박했으며 두 집에 한 집 꼴로 집을 판다는 팻말이 붙는가 하면 ‘보스턴 글로브’지의 부동산광고 지면은 평소보다 3배로 늘어났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많은 부동산 매물이 제때 팔리지 않아 92년이 돼서야 주택시장이 정상을 회복했다는 사실이다. 왜 보스턴의 주택시장은 몇 년씩이나 집을 팔지 못해 이사가지 못하는 수만가구를 붙잡아두고 있었을까. 이는 주택시장이 불완전경쟁시장이기 때문이다. 주택을 내놓는 사람들은 보통 자기 집의 위치나 인테리어 또는 주변환경 등이 다른 집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비합리적이지만 약간 높은 가격에 내놓는다. 조금 높은 가격에 내놓으면 빨리 팔릴 가능성은 낮지만 언젠가는 매수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92년이 되어 매사추세츠의 주택시장은 정상을 되찾아 더 이상 매물이 넘쳐나지 않았지만 대신 가격은 최고가일 때보다 30% 정도 내려갔다. 따라서 담합 아파트 값은 잠시 주춤할 수는 있지만 서울의 아파트 값이 하락 추세에 있다면 반드시 떨어지게 된다. 아니 담합 아파트 값은 하락세에 접어들면 그동안 내려가지 않은 몫까지 포함해 더 큰 폭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다만 그 지역에 가격상승의 새로운 요인이 발생한다면 나 홀로 상승세를 탈 수 있겠지만 담합 아파트들이 대부분 강남 등 가격선도 아파트단지가 아니라는 점에서 주택수요의 기준이 바뀌기 전에는 이상현상이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생물학에는 유전적 부동(Genetic Drift)과 창시자 효과(Founder Effect)라는 게 있다. 개체 수가 적은 집단은 확률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대립 유전자의 비율이 모집단의 비율과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유전자 부동이다. 또 한 개체군의 일부가 분리돼 새로운 지역에서 집단을 이룰 때 원래 집단의 대립유전자 빈도와 다르게 돼 진화의 요인이 되는 것을 창시자 효과라고 한다. 페루의 원주민이 모두 O형의 혈액형을 갖고 있는 것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지역 사이의 빈번한 이동으로 유전자 확산(Gene Flow) 현상이 일어나면 창시자 효과는 사라지게 된다. 아파트 값 담합행위도 이와 유사할 것 같다. 실거래가 공개가 꾸준히 이뤄지고 거래가 활성화된다면 거품은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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