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피플 인 이슈] 제리 양 야후 CEO

'넷세대 아이콘', MS·아이칸 협공에 쓰러지나<br>95년 세계최초 검색엔진 설립… 최근 구글 급성장에 고전<br>MS와 매각 협상 결렬이후 주가 폭락에 주주들 불만 고조<br>아이칸도 노골적 퇴진요구… 내달 주총서 자리 지킬지 관심

●제리 양 약력
▲1968년 대만 타이베이 출생
▲1978년 미국으로 이주
▲1994년 스탠퍼드대학 전기공학과 졸업
야후의 시초인 '제리의 WWW 가이드' 개발
▲1995년 친구 파일로와 공동으로 야후 설립
▲1998년 타임지 선정'디지털 영향력 50인'중 6위로 선정
▲2007년 야후 CEO로 취임


[피플 인 이슈] 제리 양 야후 CEO '넷세대 아이콘', MS·아이칸 협공에 쓰러지나95년 세계최초 검색엔진 설립… 최근 구글 급성장에 고전MS와 매각 협상 결렬이후 주가 폭락에 주주들 불만 고조아이칸도 노골적 퇴진요구… 내달 주총서 자리 지킬지 관심 유주희 기자 ginger@sed.co.kr ●제리 양 약력▲1968년 대만 타이베이 출생▲1978년 미국으로 이주▲1994년 스탠퍼드대학 전기공학과 졸업야후의 시초인 '제리의 WWW 가이드' 개발▲1995년 친구 파일로와 공동으로 야후 설립▲1998년 타임지 선정'디지털 영향력 50인'중 6위로 선정▲2007년 야후 CEO로 취임 제리 양(40) 야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7일 주주들에게 서한을 보내 야후재팬 등 아시아의 자산을 매각해 주가를 보전하겠다고 밝혔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인수 시도가 무산되면서 야후 주가가 급락하고,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이 주주들을 포섭해 주가를 받칠 것을 요구하면서, 주주들에게 무언가 선물을 안겨 CEO인 자신에 대한 불만을 잠재워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리 양은 올들어 MS의 집요한 인수 제의에 시달려왔고, MS와의 협상 여부에 따라 야후 주가는 널뛰듯 요동쳤다. 그러나 MS가 야후와의 인수 협상이 공식적으로 결렬됐다고 밝힌 지난 6월 12일 이후로 야후의 주가는 30% 이상 폭락했다. 3분의1가량의 재산이 줄어든 주주들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상황이고, 그 불만이 그대로 제리 양에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제리 양 CEO는 지금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오는 8월 1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그가 CEO의 자리를 지킬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그는 양쪽으로부터 협공을 당하고 있다. MS가 아직도 호시탐탐 노리고, 칼 아이칸은 지난 5월부터 기를 쓰며 제리 양을 끌어내리려 하고 있다. 야후 주식 7,000만주 가량을 보유하고 있는 아이칸은 최근 인터뷰에서 "제리 양이 야후를 위해 도대체 뭘 했느냐"며 비판했다. 아이칸은 야후의 검색 사업이 안정적이지 못하며, 구글에 맞서기 위해서 MS와 손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설상가상으로 유능한 엔지니어들이 잇따라 구글 등 경쟁사로 자리를 옮기기고 있다. 특히 야후는 21일 결국 아이칸을 이사진으로 선임해 아이칸의 입김은 향후 더 거세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주총에서 지지를 받지 못할 경우 제리 양은 CEO 자리를 내놓아야 할 형편이다. 제리 양은 영국 옵서버지에 의해 '넷 세대(net generation)의 아이콘'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의 생존 게임은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미국 정보통신(IT) 산업의 정글 논리를 그대로 보여준다. 제리 양은 대만의 미국 이민 1.5세대. 중국식 이름은 양즈위안(楊致遠)이다. 10살때 영문학 교수인 어머니를 따라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이민갔다. 1994년 스탠퍼드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을때 동료인 데이빗 파일로와 함께 취미삼아 인터넷에 올려져 있는 정보를 쉽게 찾는 안내 웹사이트인 '제리의 월드와이드웹(WWW) 가이드'를 공개했는데, 이 사이트가 세계 최초의 검색 엔진인 야후의 시초다. 이 사이트가 네티즌들의 입소문을 타고 퍼지자, 제리 양은 사업성이 있음을 재빨리 감지하고 1995년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의 도움을 받아 친구 파일로와 함께 '야후'라는 이름으로 세계 최초의 포털사이트를 열었다. 인터넷DML 급성장에 힘입어 캐나다ㆍ오스트레일리아ㆍ일본 지사를 차례로 설립하고, 1997년에는 한국 야후도 만들었다. 1998년 제리 양은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사이버 공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0인' 중 6위를 차지했다. 야후는 닷컴 버블이 정점에 달한 2000년에 시가 총액 916억 달러의 다국적기업으로 성장했고, 곧이어 닷컴 버블이 붕괴될때에도 최강의 인터넷 검색엔진을 바탕으로 살아 남았다. 2007년 통계에 따르면 전세계 야후 웹사이트 페이지뷰는 하루 평균 34억 회에 달하며, 방문자 수는 세계 1위다. 경영인으로서 제리 양의 트레이드마크는 끊임없는 인수를 통한 덩치불리기다. 제리 양은 세계 최대 포털사이트로 등극하기 위해 '최고의 수준을 지닌 파트너와 협력하라'는 신조를 내세워 잇따라 IT업체들을 인수하면서 야후를 확장해왔다. 제리 양은 1998년 마케팅 서비스 기업인 '요요다인', 전자상점 운영기업인 '바이어웹' 등을 차례로 인수했다. 또 클래식게임닷컴이라는 게임사이트를 인수해 '야후!게임' 서비스를 신설하고, 인터넷메일 서비스업체인 '포11'을 인수해 '야후!메일'을 만들었다. 볼 거리, 놀 거리가 많아야 네티즌들을 가능한 오래 포털사이트에 붙잡아둘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2000년대 들어 제리양은 웹2.0 서비스에 공을 들였다. 2005년에는 사진 공유 서비스인 '플리커'를 인수하고, 같은 해 블로그 서비스인 '야후!360도'를 선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발주자인 구글에게 점차 검색시장을 내주자, 제리양은 2007년 6월 테리 시멜 전 CEO를 해고하고 직접 CEO로 취임, 메일 용량을 무제한 제공하는 등 구글 따라잡기에 나섰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구글의 급성장으로 제리 양의 성과는 점점 잊혀져가는 분위기다. 제리 양은 지난해 6월부터 CEO로서 직접 경영에 나선 이후 8분기 연속 실적 부진이라는 기록을 내며 주주들을 실망시켰다. CEO 취임 이후 야후의 주가는 16.5% 하락했다. 미국의 경제전문지인 포춘에 따르면 야후의 한 중견 임원은 "그는 CEO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털어놨다. 제리 양은 정치적으로 실수를 저질러 비판을 받기도 했다. 야후는 지난 2005년 해외 민주화운동 단체에 야후 계정으로 이메일을 보낸 중국 기자 스타오(師濤)의 개인정보를 중국 공안에 제공, 스 기자의 체포를 도왔다. 이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제리 양은 "사업을 하려면 그 나라 법을 따라야 한다"고 궁색한 변명을 했다. 결국 제리 양은 지난해 말 미국 의회에 출석해 스 기자의 어머니에게 머리를 숙이며 손해배상을 약속했다. 제리 양이 MS의 인수 제의를 뿌리치고 독자적인 길을 걷는다 해도, 구글이라는 높은 벽이 야후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 지난 6월 조사에 따르면 미국 검색시장에서 구글의 시장점유율은 무려 70%를 차지하고 야후는 고작 20% 정도에 불과하다. 제리 양의 내리막길이 이제 종언을 고할지, 아니면 난국을 극복하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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