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뚝심의 승부사 박병엽 다시 돌아올까

이준우 대표체제로도 뚜렷한 돌파구 없고 불확실성 되레 커져<br>잠시 휴식기 가진 뒤 고문 등으로 복귀… 팬택살리기 역할할 수도


'팬택 신화의 주인공' 박병엽(사진) 팬택 부회장이 실적 부진을 이유로 전격 사의를 표명하면서 팬택은 이제 창업자 없이 홀로 생존해야 하는 시험대에 올랐다. 당분간은 이준우 대표를 중심으로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 집중한다는 계획이지만 뚜렷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박 부회장의 복귀설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박 부회장은 24일 오후 채권단에 대표이사직 사의를 표명하마자 사내 게시판에 "역량 부재로 깊은 자괴와 책임감을 느낀다"는 짧은 소감을 남겼다.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은 박 부회장의 사의 소식에 만류에 나섰지만 박 부회장은 이날 저녁 대표직을 내려놓으며 22년 동안 몸담았던 팬택을 떠났다. 별도의 소회를 표명하거나 퇴임식도 열지 않은 '박병엽식' 퇴장이었다.


박 부회장은 그간 팬택을 이끌어오면서 두 차례나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지난 2009년 팬택앤큐리텔 합병을 앞두고 주주나 채권단 누구라도 반대하면 미련 없이 회사를 떠나겠다고 밝혀 순조롭게 합병을 성사시켰다. 2011년에는 팬택의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둘러싼 채권단의 불협화음이 거세지자 대표직을 내려놓겠다는 배수진을 친 끝에 성공적으로 기업개선작업을 마무리했다. 박 부회장에게 '뚝심의 승부사'라는 별명이 붙는 이유다.

박 부회장은 글로벌 스마트폰 경쟁이 한층 심화된 올해 초까지만 해도 팬택 살리기에 사활을 걸었다. 지난 3월 팬택 김포공장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는 100여명의 주주 앞에서 거듭 머리를 조아리며 팬택 회생의 의지를 다졌다. 당시 박 부회장은 "과거 팬택앤큐리텔 시절부터 회사의 미래를 믿고 투자한 주주에게 실망감을 안겨서 죄송한 마음뿐"이라며 "팬택의 본연적 경쟁력을 확신하는 만큼 목숨을 바쳐서 올해는 반드시 주주 가치 실현에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자신은 투자 유치를 위해 대외 활동에 주력하고 이준우 사업총괄 부사장을 각자 대표로 선임해 경영 전반을 맡기는 묘안도 짜냈다.


하지만 박 부회장은 최근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판도가 급변하자 대표직 사퇴를 둘러싼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하고 일본 파나소닉과 NEC가 휴대폰사업 철수를 결정한 데 이어 한때 스마트폰의 대명사였던 노키아와 블랙베리마저 팔리면서 휴대폰 시장의 판도가 송두리째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특히 5년에 걸친 기업개선작업 때도 도입하지 않았던 대규모 무급휴직을 다음달부터 실시키로 결정하면서 'CEO 박병엽' 이전에 '인간 박병엽'의 고뇌가 사퇴라는 결심으로 굳어졌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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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택 관계자는 "모토로라에 이어 노키아까지 무너지는 것을 보며 박 부회장이 큰 충격을 받은 것 같다"며 "최선을 다했지만 더 이상 팬택에 있어서는 구성원과 주주에게 면목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박 부회장은 현재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는 생각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업계에서는 잠시 휴식기를 가진 뒤 어떤 식으로든 팬택 살리기에 나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동안 이준우 대표를 중심으로 한 후계구도를 조직에 안착시켰다고는 하지만 박 부회장이 떠난 이상 팬택의 불확실성은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박병엽 부회장의 존재감이 앞으로 더 부각될 수 있다는 얘기다. 채권단 역시 박 부회장이 가진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는 예정이어서 결국 박 부회장이 고문 등의 역할을 통해 팬택에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박강호 대신증권 연구원(테크팀장)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팬택의 역사에서 박 부회장을 빼놓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그만큼 팬택 살리기에 박 부회장이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는 증거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팬택은 박 부회장이 사의를 표명한 24일 저녁 이준우 대표이사 부사장을 사장으로 임명했다. 강원도 홍천 출신인 이 대표는 구미공고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현대전자산업 연구실장으로 일하다 2001년 팬택앤큐리텔이 출범하면서 팬택으로 자리를 옮겼다. 팬택 출범 당시부터 중앙연구소장과 기술전략본부장 등주요 요직을 두루 거쳐 박 부회장의 의중을 가장 잘 헤아리는 측근으로 꼽힌다.

이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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